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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이영미, 사극의 세계관 변화 통시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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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이영미, 사극의 세계관 변화 통시적 분석

입력
2008.03.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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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신하, 주변 실존인물이 중심이 된 이른바 ‘왕조사극’은 시대를 막론한 흥행 보증수표였다. 문화평론가인 이영미씨는 최근 계간 ‘비평’ 봄호에 게재된 ‘왕조사극이 비추는 정치와 사람’이라는 글에서 “대중예술의 경향은 당대 수용자들의 사회심리의 변화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사료적 충실성을 상당히 갖출 수 밖에 없는 왕조사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1960년대 이후 왕조사극이 시청자들의 사회관ㆍ정치관의 변화에 따라 어떤 식으로 진화해왔는지를 분석했다.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신파적 서사…1960~70년대

이씨는 <강화도령님> (1963) <치마바위> (1963), <장희빈> (1971) 등 라디오 왕조사극의 전성기인 60년대와 TV 왕조사극시대가 개막한 70년대의 작품의 특징으로 ‘충의효열(忠義孝烈)’의 이데올로기와 신파적 서사를 꼽는다. 이씨는 당시까지도 왕 앞에 신하와 백성이, 부모 앞에 자식이 무릎을 꿇고 존경과 충성ㆍ효도를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중세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으며 왕조사극의 주된 시청자들은 이런 윤리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당시 작품들에서 굴욕감과 무력감 때문에 자기연민을 발동하고 이를 과장된 슬픔으로 표현하는 신파적 서사가 유행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충의효열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려 했지만, 정작 자본주의적인 계약사회로 변한 현실에서 그 이데올로기는 무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종이 강화시절 사귀었던 처녀가 후일 시골처녀라는 결함 때문에 후궁도 되지 못하고 철종 앞에서 인두로 얼굴을 지지는 등 자해를 하는 것, 철종 역시 끊임없이 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강화도령님> 의 서사는 이런 점에서 호소력을 지녔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 반영…1980년대

이 시대의 대표작은 <추동궁 마마> (1983)에서 <대원군> (1990)까지 이어지는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신파적인 가족물ㆍ애정물의 틀을 버리고 세력결집, 결의, 집단행동, 지략싸움, 음모, 야합, 배반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중시한 점이다. 역사 속의 왕과 신하의 가장 중요한 일이 ‘정치’였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것으로, 신파물에 염증을 느꼈을 남성 혹은 젊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고 이씨는 추론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편년체적 구성, 주요인물의 이름과 직책의 자막처리, 남성화자의 해설 등의 다큐멘터리 기법은 당시 인기 있었던 <제1공화국> 류의 정치드라마와 매우 흡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씨는 이런 구성은 대통령 암살과 쿠데타, 전국적 민주화운동과 유혈진압 등 엄청난 정치적 경험을 한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고조된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때까지 정치행위는 여전히 왕과 양반, 종친 등 남성지배층의 전유물이었으며 내시나 상궁, 일반백성 같은 이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허구적 설정과 서바이벌 게임…2000년대

90년대 초ㆍ중반 일시적인 침체기를 겪은 뒤 2000년대 왕조사극은 소재는 기존과 다를 바 없었으나 80년대 사극과 대조적으로 극적사건에 집중하고 사료기록에 없는 사건들을 다수 포함한 형태로 변화한다. <이산> (2007)의 세손의 대리청정 삼일천하, <불멸의 이순신> (2004)의 거북선 첫 운행 침몰 등은 모두 사료적 근거가 없는 사건이다. 또한 지금까지 권력과 출세에 대한 욕망에서 다소 비껴있던 여성, 내시, 상궁, 중인들도 정치적 야망과 명예욕을 지닌 인물로 부각된다.

<여인천하> (2001)의 정난정, 문정왕후 <이산> 의 정순왕후, 화완옹주 등은 심지어 왕의 암살을 시도할 정도로 적극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상전의 요구와는 별도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들로, 이는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세계와 닮아있다고 본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권력의 문제를 이제 보통사람들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된’ 범상한 보통시청자들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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