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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모델하우스 도우미의 세계 유연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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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모델하우스 도우미의 세계 유연재씨

입력
2008.03.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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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제대로 하고 싶다고요? 그럼 모델하우스 도우미부터 찾으세요."

10일 경기 일산에 있는 '파주 푸르지오' 아파트 모델하우스 현장. 아직 분양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곳에 있는 도우미는 유연재(33ㆍ여)씨 혼자였다. 이유를 묻자 "현장에서는 '상시 감원'으로 최후의 1인만 남는 게 이 세계의 관례다"고 그는 말했다.

모델하우스 오픈에 맞춰 30~40명의 도우미들이 대거 발탁이 되지만 청약접수 기간이 끝나면 일주일 만에 이중 3분의 2 이상이 '해고' 되고, 다시 계약일이 끝나면 2~4명만 '생존'하는 게 일반적인 사이클이라는 것. 특히 미분양으로 오랜 기간 체류해야 할 경우는 최후의 1인만이 선택을 받는다. 냉혹한 적자생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모델하우스 도우미의 세계라는 것이다.

모델하우스 도우미로 올해 12년째 일하는 그가 자신보다 '젊고, 예쁜' 후배들과 경쟁에서 최후의 1인이 된 노하우는 뭘까? 그는 "모델하우스라는 특수한 현장에 맞는 전문성"이라고 답했다.

자동차 전시나 제품 홍보 도우미의 경우 매장을 찾은 손님을 상대로 설명만 하면 되지만 모델하우스 도우미의 경우 고객들과 '쌍방향 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고객 대부분이 사전에 상당한 정보를 입수하고 오기 때문에 고객들의 '테스트'에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빅 마우스'를 상대로 '꺾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분양성적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빅 마우스는 모델하우스 현장에서 단점을 부각시켜 다른 고객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隱語). 이들을 상대로 아파트의 장점을 부각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 '꺾기'로 모델하우스 도우미들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리고 모델하우스를 찾은 고객을 상담석에까지 앉히기 위한 사전 작업도 도우미들의 필수 임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상담원과 주고 받는 '사인'이다.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상담석으로 이동하는 사이 고객이 동호수를 지정해 줘야 상담에 응하는 고객인지, 가격이 포인트인지, 아니면 인테리어에 초점을 두는 지를 수신호로 알려줘야 계약률이 높아진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또 그는 모델하우스 베테랑 도우미 활용법도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도우미의 경우 일년에 10곳 이상 현장을 돌아다니며 지역 부동산에 대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6년차 이상이면 부동산 전문가 못 지 않은 현장감을 갖추고 있다.

그는 "어떤 고객 분들은 아예 음료수를 사 들고 찾아와 아파트의 장단점을 고치고치 묻는다"며 "이럴 때는 다른 현장과 비교해 장단점을 솔직히 알려주는데 어떨 때는 다른 아파트를 사라고 권유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경쟁사끼리 치열한 정보전을 펼칠 때는 도우미들은 '미녀 스파이'로 변신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 인근 지역에서 동시에 분양에 들어갈 경우 경쟁사 도우미로 들어가 기밀인 '실제 계약률'과 '고객 동향' 등 민감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경쟁회사에서 일한 경험만 있어도 바로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도중 해고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물론 그도 그런 경험을 당한 적이 한번 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입문해 12년째 도우미를 직업으로 삼아 온 유씨는 최근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무대는 예전같이 모델하우스지만 역할을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유씨는 "도우미로 현장에서 고객들을 많이 만난 장점을 살려 2~3년 후에는 현장 상담원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씨는 "모델하우스 도우미가 화장 예쁘게 하고 말만 잘해 쉽게 돈버는 사람들이란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부동산 전문가 못 지 않은 지식을 갖추고 고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전문직으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파주=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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