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지휘하는 겁니다.”
젊은 지휘자로 주목받고 있는 런던 필의 음악감독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36)의 나이에 대한 생각은 간결하지만 분명했다. 11~13일 런던 필의 내한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유로프스키는 10일 청바지와 가죽 재킷차림으로 기자간담회에 나왔다. 나이 많은 단원들을 대할 때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나이의 두 배가 넘는 70, 80대 단원들도 있다. 당연히 그들을 존중하지만 지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지휘자는 사람이 아닌 음악을 지휘한다”고 답했다.
유로프스키는 최근 지휘계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세대 교체의 중심에 서있다. 그를 비롯해 구스타보 두다멜, 다니엘 하딩 등 20, 30대 지휘자들이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하지만 정작 그는 나이가 젊다는 이유 때문에 깜짝 스타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듯 했다
. 23세에 로열 오페라에서 지휘하는 등 일찍부터 경력을 쌓은 유로프스키는 “신체적 나이는 젊을지 몰라도 음악적 경력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 뒤, 오히려 젊은 지휘자들이 너무 많고, 또 빨리 주도권을 잡는 것에 대해 걱정스럽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예전에도 10대에 이미 뛰어난 성과를 낸 음악가들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TV나 인터넷 같은 미디어가 없었기에 꾸준히 실력을 쌓아 점진적으로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요즘은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맨 윗 자리로 던져지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올라가는 것은 쉽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 자신을 잃지 않고 더욱 성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런던 필은 러시아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 영국 작곡가인 월튼과 터니지의 작품을 연주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로프스키의 배경과도 밀접한 구성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양한 것을 흡수하면서도 형태는 변하지 않는 스폰지에 비유했다. “작곡가인 할아버지와 지휘자 아버지를 뒀기에 제가 음악을 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이 큽니다. 독일과 영국에서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러시아 음악가라는 본질과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해 가을 쿠르트 마주어(81)로부터 런던 필의 수장 자리를 물려받은 유로프스키는 “뛰어난 오케스트라는 카멜레온처럼 레퍼토리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인위적으로 런던 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밝혔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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