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하되 천하지 않고, 난만하되 유치하지 않은 것. 그 절묘한 균형이 탄성을 자아낸다.
‘캔버스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의 개인전 ‘길 위에서’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에서 12~26일 열린다. 스케치 여행을 통해 그린 ‘기행회화’들을 선보이는 3년 만의 전시다.
화가의 발걸음은 여러 곳으로 향했다. 우리 영토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화려강산’ 시리즈부터 벚꽃 난분분 휘날리는 일본의 고도(古都)까지 두루 전시장에 걸렸다. 하지만 전시의 꽃은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등 남아메리카를 여행하고 그린 라틴 시리즈. 라틴의 강렬한 색과 여흥을 원색의 간명한 이미지와 역동적 구도 속에 담은, 예쁘고 또 예쁜 작품들이다.
한지를 개어 부조처럼 쌓아올린 이미지로 배경과 이미지에 고도차(高度差)를 두는 방식은 여전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카리브해의 물빛과 쿠바 여인들의 빨갛고 노란 옷, 해변의 하얀 집 등 라틴 특유의 남국 풍경이 한지의 독특한 질감과 어우러져 화사하고 정겹다.
음악이 곧 삶이었던 밴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공연장 호텔 나시오날, ‘고통의 여사제’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 열정이 삶의 동력이었던 헤밍웨이의 카페 라 테라사, 사람들의 입 안에서 성녀와 악녀 사이를 오갔던 에비타의 무덤, 평생이 시력을 잃는 과정이었으나 그 대가로 우주적 상상력을 얻게 된 보르헤스의 생가…. 투쟁과 열정으로 점철된 이곳 풍경들은 모든 기행예술이 주는 독특한 아우라로 눈길을 끌지만, 꼭 이름난 곳이 아니어도 좋다. 짙푸른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발가벗은 무명의 꼬마(작가 자신)도 그 날렵한 몸놀림으로 보는 이를 유혹한다.
보고 나면 가슴이 절로 설레는, 떠나고 싶다는 일상의 원심력을 자극하는 ‘불온한’ 그림들이니, ‘봄처녀’들은 특히 주의해야겠다. (02)734-6111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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