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조선업계 등에 자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주물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어제까지 사흘간 납품을 중단했다. 주물용 고철값이 1년새 80% 가까이 올랐는데도 대기업들이 납품가격 인상폭을 10%대로 묶는 바람에 업계 전체가 도산위기에 처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1차 시위’에선 공장을 돌리며 납품만 중단했지만, 15일까지 대기업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으면 납품 중단과 함께 공장 가동까지 멈추는 고강도 실력행사를 벌일 태세다. 레미콘 제관 아스콘 업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고 한다.
이번 사태는 일차적으로 국내외 원자재값 급등에 의해 촉발됐지만, 보다 본질적 원인은 이른바 ‘갑과 을의 주종관계’로 표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왜곡된 생태계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고철값은 190%, 선철값은 120% 이상 올랐는데도, 이를 원료로 한 주물제품은 고작 20~30% 인상된 것을 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위세에 얼마나 짓눌려 왔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원자재 파동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터질 환부였다는 얘기다.
주물업계의 ‘반란’으로 드러난 중소기업의 열악한 실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발간한 백서엔 납품가 후려치기, 발주계약 취소, 환차손 전가, 하도급대금 지불 지연, 기술 탈취 등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는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대기업이 원가절감 목표치를 세우면, 중소 협력업체나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 5년 내내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운운했지만, 중소기업은 늘 ‘봉’이다.
새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개선될 조짐이 없다. 중소기업들이 기대했던 납품가격 연동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구체적 내용은 국정 핵심과제에서 대부분 빠졌고, 중기제품 공공구매 확대나 중기 지원체계 효율화 등 구태의연한 얘기만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책상머리에 앉아 상생 운운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정확히 챙길 필요가 있다. 대기업 역시 중소기업 없는 기업 생태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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