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피곤해 보였다.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발표(5일) 다음날부터 주말인 일요일까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지속된 팍팍한 업무보고 탓에 거의 녹초가 됐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취임식도 토요일에 했다. 당연히 대다수 공정위 직원들이 주말을 헌납해야 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10년 인연을 쌓아온 ‘MB맨’이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노 홀리데이’는 새 정부 코드 맞추기가 아니라 몸에 밴 습성인 듯했다. “중대한 나라 일을 맡았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업무를 파악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거죠.” 공무원이 1시간 먼저 출근하면 국민들이 그만큼 편해진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전하며, “강요해서는 될 일이 아니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인 9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로 출근하는 백용호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났다.
까칠한 질문을 했다. “일각에서 경쟁정책에 대해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던데요?” 동의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더니, 이내 자신감이 충만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가 경쟁정책을 잘 모른다고요? 대학에서 정책과정론, 정책형성론 등을 강의한 사람입니다.”
백 위원장은 “정책은 개별 콘텐츠보다 중요한 것이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라고 했다. 얼마나 국민들이 신뢰를 할 수 있는 정책을 펴 나가느냐는 것이 중요하며, 현안 하나하나는 합의로 이뤄지는 만큼 부차적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향후 정책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말해 줄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에서 ‘경제 검찰’ 공정위의 역할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간 공정위의 몸통인양 인식돼 온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고, 새 정부를 대표하는 ‘친(親)시장주의자’인 백 위원장이 수장 자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작성했다는 취임사에서도 공정정책의 대폭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공정 경쟁의 룰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고 기업 입장에서 불편이 없는 지를 역지사지해야 한다. 개방화와 국제화로 시장의 외연이 확대된 만큼 공정경쟁의 기본 틀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 그는 특히 직원들에게 “현 정부가 발표했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나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이 공약이니까 바꾼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며 “변화하는 세계 흐름 속에서 적정한 룰을 찾는다는 능동적 사고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공정위가 기업들에게 ‘저승사자’였다면, 이제는 기업들이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지원자’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다.
백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자긍심’을 강조했다. “조직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면 직원들이 솔선수범하고 헌신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중차대한 변화의 시기에 위원장 자리를 맡게 된 본인의 의지인 듯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