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후 원자재가는 평균 35% 올랐는데 납품가는 제자리 걸음이에요. 투쟁을 해서라도 가격을 정상화해야지 아니면 업계가 공멸할 겁니다.”(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
주물업계가 대기업에 납품원가 인상을 요구하며 납품 중단에 들어간 지 3일째인 9일, 40여 주물업체가 모인 인천 서구 경서동 경서주물공단에는 일부 직원들만 출근해 주물 기계와 생산라인을 점검하는 등 여느 때 주말과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계를 만지는 직원들 표정은 어두웠고 사기는 바닥이어서 업계에 불어 닥친 위기감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A주물업체 생산직원 박모씨는 “이 업계에선 나름대로 탄탄하다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직원들 사이에 언제 회사가 문 닫게 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경서주물공단 15블록에 위치한 진흥주물. 기술력과 성장성을 인정 받아 수 차례 정부 표창을 받은 업계 10위 권의 건실한 주물업체이지만, 최근의 원자재값 인상에 따른 채산성 악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진흥주물 이완호 관리부장은 “원자재인 고철값이 연초 ㎏ 당 300원에서 현재 510원까지 치솟아 월 2억원 가량의 원가 상승이 발생하고 있다”며 “월 매출 20억원에 2% 안팎의 낮은 영업이익률을 감안하면 가만히 앉아서 적자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4년 원자재 파동을 겪을 때에도 업계 고통이 컸지만, 올해 원자재난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이 안 보이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주물업계는 일단 대기업의 제품 값 인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소비재 업체의 경우 주물업계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도 쉽지 않아 대기업과 주물업계 간 협상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곽영은 상무는 “일단 대기업과의 협의가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15일 2차 납품 중단, 이 달 말 3차 납품 중단 등의 실력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달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4월 중 회사 대표들의 사업자등록 반납까지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철 사재기로 조업 자체에 타격을 받는 업체들도 많다. B주물회사 영업담당 임원 김모 씨는 “원자재값은 끝 모르게 치솟고, 대기업은 납품가를 올려주지 않아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원자재 유통업체들의 사재기 횡포에서만이라도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주물회사인 삼창주철공업㈜ 관계자는 “사재기로 쌓여 있는 고철이 시장에 풀려야 제조원가가 내려가고 주물업계도 어느 정도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 납품가 인상과 사재기 근절은 정상 조업의 최소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철근ㆍ고철 매점매석을 집중 단속키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1일부터 고철과 철근을 매점매석 행위 품목에 포함시키고 재고량이 적정 수준(비교시점 대비 10% 초과 때)을 넘어가면 시정명령에 이어 강력한 처벌을 하기로 했다.
앞서 8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판교 신도시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해 철근 사재기 현황 등을 점검하고 “철근 사재기를 철저히 단속하라”고 관계 부처 실무자들에게 지시했다.
인천=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이규홍 삼창주철공업 사장 심경토로/ "고철 사재기까지 기승…공장 가동률 50% 수준 그쳐"
“생산할수록 적자가 나는데 어떻게 조업을 합니까? 사장도 답답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도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져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됐습니다.”
주물업계 중견 기업인 삼창주철공업㈜ 이규홍 사장은 “원자재값은 자고 나면 10~20%씩 오르는데 제품값은 제자리걸음이니 어떤 업체가 버텨내겠느냐”며 “대기업들이 제품가격을 인상해주지 않을 경우 문 닫을 주물업체가 속출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사장은 “고철 값이 연초대비 톤당 12만원이나 올랐는데 월 500톤 가량의 고철을 구매해 제품을 생산하는 우리 회사의 경우 원자재 인상치로만 월 6,000만원이 더 들어가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들이 원가에 연동해 제품 값을 올려줘야 영세 주물업체들도 정상 조업과 납품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조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공장 가동률도 평소의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고철 사재기도 업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유통상들의 사재기가 횡행해 통상 수입 고철보다 싼 국내산 고철이 더 비싸게 유통되는 가격 왜곡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당장 대기업들이 제품 값을 올려준다 하더라도 원자재 가격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서는 조업이 정상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