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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똥꽃' 어머니 걸음마다,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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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똥꽃' 어머니 걸음마다,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폈네

입력
2008.03.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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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지음 그물코 발행ㆍ252쪽ㆍ1만2,000원치매 걸린 87세 노모와 50세 아들 간의 소통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똥이 발에 밟혔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어머니는 얼굴이 반쪽이었고, 훨씬 굵어진 주름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 곁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머니의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49쪽) 오랜만에 본 노모는 그렇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벌겋게 헐어버린 피부와 하얗게 탈색된 체모를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2005년 북유럽 연수 출국 하루 전, 그는 서울 큰집에서 몰골이 다 된 모친을 발견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전례 없이 빨리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고령화는 노인성 치매라는 국가적 문제를 낳았다. 어떻게 해서든 치매에 걸리지만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은 이 곳 노인들의 비원이 된 지 오래다. 인간성은 물론 인간 관계까지 송두리째 파괴된다는 사실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책은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치매를 물리친 현장을 생생히 복원한다.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꽃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모는 방 바닥을 똥을 부려 놓고야 말았다. 아들을 기다리다 어머니(김정임ㆍ87)가 눈 똥을 아들(전희식ㆍ50)은 꽃으로 본다. 그가 지은 시의 제목과 책 제목이 <똥꽃> 인 까닭이다.

후배의 소개로 전남 장수군의 대표적 생태 마을인 해발 620m의 하늘소 마을에 2006년 이사를 왔다. 지인들과 대안학교 학생들 등 100여명이 동참, 10년 넘게 비워 놓은 10평짜리 집을 두 달 걸쳐 리모델링해 치매 환자를 위한 맞춤형 주택을 지었다.

구석구석 어머니의 신체 조건을 고려한 작업이었다. 움직임이 불편한 어머니가 똥오줌은 물론 뒷물까지 할 수 있는 집 구조가 그 답이었다. 전북일보는 건축 당시 현장을 크게 보도했고, KBS의 ‘6시 내 고향’은 전국에 그 광경을 내보냈다.

“마당에 눈이 녹아야 빨리 나댕길낀데….” 요양 보호사 전문 강사 이진희씨는 최근 만난 김씨가 혼자서 걷게 되길 바랄 정도로 의식이 명료해졌다고 전한다. 책은 어머니와 아들 간의 긴밀한 소통 방식을 흥미롭게 재현한다.

그는 “귀를 잡수셔서 다른 사람 말은 잘 못 알아들어도 내가 하는 말은 잘 알아 듣는 게 신기할 정도”인 노모를 정해진 시간에 오줌을 누였고, 잡음을 제거한 인터넷 전화로 통화했다.

전씨는 치매를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드는 이물질”이라며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와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 가장 반가운 것이요?” 마음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 칠 때라 한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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