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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시인, 자연과 일상을 응시하다/ 김종길 시인 7번째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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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시인, 자연과 일상을 응시하다/ 김종길 시인 7번째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입력
2008.03.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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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란 구절이 든 시편 ‘성탄제’로 널리 알려진 원로시인 김종길(82)씨가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현대문학 발행)를 출간했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2004) 이후 4년 만이다. 61년 시력(詩歷)의 시인은 이번까지 7권의 시집만 상재하는 과작을 통해 선명한 이미지에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발표시기(2002~2007) 순으로 단정히 정리된 44편의 시-행사시 8편은 시기와 무관하게 따로 묶였다-엔 노년의 일상과 사색이 주종을 이룬다. 노시인의 심안은 줄곧 번잡한 인간사회보단 평안한 자연을 향한다. ‘어느덧 팔순이라는데 마음은/ 아직도 바닷가에서 노는/ 어린아이 같다’(‘팔순이 되는 해에’)는 시인은 특히 자연의 신생과 변화에 마음을 아낌없이 내준다. ‘경이로울 것이라곤 없는 시대에/ 나는 요즈음 아침마다/ 경이와 마주치고 있다.// 이른 아침 뜰에 나서면/ 창밖 화단의 장미 포기엔/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영글고,// 산책길 길가 소나무엔/ 새순이 손에 잡힐 듯/ 쑥쑥 자라고 있다.’(‘경이로운 나날’)

아침 산책로에 놓인 벤치 위 낙엽을 보며 ‘나보다 먼저 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옆에 말없이 걸터앉는다.’는 시편(‘가랑잎 한 잎’)에선 노년의 쓸쓸함보단 자연을 벗삼는 경지에 이른 시인의 순한 마음이 먼저 읽힌다. 간결하고 구체적인 시어로 엮인, 아담한 분량의 시편들이 “한마디의 군소리도 낭비하지 않는 야무진 언어 경제”(평론가 유종호)란 시인에 대한 상찬을 되새기게 한다.

수필가 피천득, 시인 김춘수 김장호, 시조시인 김상옥 등 먼저 간 문인들을 추모하는 시편들도 여럿이다. 2006년 초여름 아카시아, 찔레, 조팝나무, 불두화의 소담한 흰 꽃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이승을 떠난 벗들을 그린다. ‘흰 꽃은 늙은이들,/ 또는 죽은 이들에 어울리는 꽃./ 올해는 나 혼자 이곳에 남아// 그 꽃을/ 보네.’(‘흰 꽃’)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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