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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화장을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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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화장을 지우고

입력
2008.03.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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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공무원ㆍ주민들과 함께 봉하마을 인근 화포천 일대에서 정화활동을 했다. 며칠 전 그곳을 둘러보며 쓰레기와 오염에 가슴 아파했던 그로서는 퇴임 10여일 만에 첫 공식 행사를 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www.knowhow.or.kr)는 요즘 대단히 붐빈다. 아침 드셨느냐는 문안부터 “떠나고 난 뒤에야 님의 소중함을 알았다”거나 노무현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찬사가 눈에 띈다. 인터넷 집만이 아니라 실제 집에도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하고 찾아와 외치는 팬들이 많다. 이른바 ‘노(盧)랜드’라는 봉하마을에서 그는 대표적 ‘관광상품’이자 영향력 있는 촌장이다.

궁금한 노 전 대통령의 행보

누구보다 말이 많았고 아직 젊고, 처음 고향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행보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낙향 준비를 해온 데 비하면 퇴임 후의 설계는 의외로 완성돼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는 퇴임 직전에 많은 말을 했다. “대통령의 권력 지위 영광 이런 것들은 인생의 행복에 별로 필요한 게 아니다”, “(퇴임 후) 사람들과 잘 안 섞여질 것 같다. 사람들 속의 격리, 그게 제일 걱정이다”,…이런 개인적인 소회와 감상이 인상적이다. 또 “앞으로는 승부의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을 것”이라거나 “현실적인 쟁점과 부닥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권교체에 대해서는 “어떤 강도 똑바로 흐르지 않지만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승부를 떠나는 자유와 홀가분함을 이야기했지만, 상실감과 공허감도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해온 사람은 내가 관여해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세상 일이 잘도 진행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러가는 걸 보면서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대통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퇴임 직전의 ‘노무현 어록’ 중에서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화장에 관한 언급이다. “재임 중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화장이었다, 화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항상 무대에 선다는 뜻이다.” 퇴임의 의미를 이만큼 적절하고 의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논리와 자기 정리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재작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는 전자방명록에 “치열한 삶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셨습니다. 치밀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인간의 삶에 대한 사려와 분별이 충분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문장이며 대구(對句)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행정부가 막을 내렸으니 편하게 하는 말이지만, 2002년 대선에서 나는 노무현을 찍었다. 선거 전 날 밤, 정몽준의 지지 철회를 보고 오히려 그의 당선을 직감했다. 그런데 장점이 많고 사려와 분별도 갖춘 인물이 왜 그토록 말을 함부로 하고 편을 갈라 싸움이나 하고, 소통에 실패했을까. 그 자신의 말대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 수직적인 위치이고 그는 너무 수평적 인간이어서 잘 안 맞은 것인가. 어쨌든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질과 천품이 아깝다.

가능성 많은 ‘롤 모델’ 되기를

이제 노 전 대통령은 화장을 지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각광은 이미 꺼졌거나 잦아들었다. 맨 얼굴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며 점차 잊혀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멘토이며 롤 모델이다.

경남도지사가 그를 맞이하면서 “오동나무는 100년 뒤 거문고가 돼 가치를 인정 받는다. 노 전 대통령도 퇴임 이후 제대로 평가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다시 대통령을 한다면 아마 잘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할 수는 없으리라.

소급과 월반이 없다는 것, 그것이 삶의 오묘함이며 어려움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남은 생애에서 아름다운 성취를 거두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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