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앞에서 원유유출 사고가 난 지 내일이면 벌써 석 달이다. 총인원 120여만, 하루 평균 1만3,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닦아냈다.
부족하지만 정부에서 생계유지비가 일부 지급됐고,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 측은 1,000억원의 기금을 출연키로 약속했다. 급한 불은 꺼진 듯하며 사태는 수습되는 듯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절망과 한숨은 골병으로 변해 육체적 고통으로 표면화했고, 물밑으로 땅속으로 스몄던 기름 찌꺼기로 생태계 파괴가 가시화하고 있다.
직접적 피해자 가운데 6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다는 한국일보 보도(5일자 12면)는 충격적이다. 193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에 있었던 부상자의 50%가 이 질병을 앓았다는 점에 비춰 태안 주민의 고통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3분의 1 이상의 주민이 우울증 강박장애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오히려 약과다. 이미 자살한 어민들도 있지만, 지금도 20%의 주민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근해어장에서는 이 달 들어 고기잡이가 시작됐다. 하지만 어획량과 어종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 KBS ‘환경스페셜(2월 27일)’에 따르면 식물플랑크톤이 사고 전 68종에서 31종으로 줄었으며, 저생(底生)생물도 30종에서 15종으로 감소했다.
반면 기름에 내성(耐性)을 갖는 새로운 변이생물들이 계속 늘어나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는 게 확인됐다. 방제의 손길이 닿지 못한 수십 곳 무인도에선 지금도 기름 덩어리들이 바다로 쓸려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국가 차원의 관심은 너무 빨리 잦아들고 있다. 재난사태 선포와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주민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생태계 복원에 박차를 가하지도 않은 채 벌써 유야무야되는 형편이다.
관련 특별법 제정은 정치상황에 묻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주민대책회의와 대화해야 할 정부의 창구도 제대로 열려 있지 않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태안반도 문제에 귀와 눈을 닫아서야 ‘섬기는 정부’의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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