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투자 확대와 규제개혁을 두 축으로 삼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 행보가 첫 발부터 무거워 보인다. 세계 금융시장 혼란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등 대외변수가 갈수록 정책 선택폭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ㆍ광물ㆍ곡물 등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필수 품목의 고공행진이 생활물가를 천정부지로 밀어올리는 바람에 서민생활 안정을 앞세운 새 정부로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 대통령이 엊그제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은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결정이다. 서민층의 소득은 수 년째 제자리 걸음인데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니 “시장 가기가 겁난다”가 아니라 “사는 게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출퇴근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국민주택기금 대출금리 동결, 공공요금 동결, 학원수강료 점검, 매점매석 단속 등의 단기 처방을 내놓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벌써부터 가격관리 차원의 정책이 초래할 시장왜곡이나 재정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편에선 정부가 당면 현안에 힘을 쏟는 동안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 등 핵심과제가 상대적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 내각이 감세와 규제개혁 등 액션 플랜(실행계획)의 실천의지를 강조하고 대운하 건설 카드도 공공연히 들이대고 있지만, 성장과 물가 중 어느 쪽에 정책의 무게를 두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내각 진용도 채 짜지 못한 채 출범한 새 정부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리되지 못하거나 상충되는 정책들을 그때 그때 산발적으로 내놓는 방식으로는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의 의욕을 일깨우지 못한다. 정부는 15일 쯤 ‘엠비노믹스’에 근거한 올해 경제운용방향을 내놓는다고 한다. 여기서 정부는 솔직한 정책 지향점과 수단은 물론, 이 대통령의 주문처럼, 구체적 일정과 성과목표까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성장 물가 경상수지 고용 금리 등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는 변수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리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국민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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