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계다.
자연, 인문, 사회과학의 어느 분야로든 접근이 가능하다. 산은 그만큼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은 등산을 단순히 몸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일부는 건강을 위한 체력 단련의 수단으로 등산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등산은 산만 오르는 게 아니라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 할 필요가 있다.
문학 그림 사진 음악 역사 생태 등 등산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폭 넓고 깊게 탐구할 수 있는 짓거리가 등산이다. 산악문학 작가 산악화가 산악사진가 등 산과 관련된 프로작가도 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해서 몇 년 까지는 새로운 자극이 있어 즐겁지만 같은 방법의 등산을 반복하다 보면 맥이 빠지고 진력이 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등산의 권태기가 올 즈음에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본다면 등산과 더 친숙한 관계를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산악명저를 두루 탐독하고 이런 명저들을 수집하거나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직접 집필을 해보는 것도 등산이 주는 즐거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산 꾼들의 산서 저술활동은 그 나라의 산악문화 역량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하다. 이제는 산과 등산을 주제로 한 산악관련 서적도 종류가 다양해졌다.
유명 알피니스트들의 자서전이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드라마틱한 육체의 기록이나, 유명 작가의 산악소설 등 산서 탐독 여행에 푹 빠져 보는 것도 크나 큰 즐거움이 된다. 산을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당연히 산과 관련된 서적을 읽어야 한다.
김장호 시인은 평생을 산과 사람을 주제로 한 글과 시를 써오며 수십 권의 저술을 남겼다. 그는 유려한 문체의<한국 명산 기> 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미국의 얼만이 <세계 100명산> 을 쓰고, 일본의 후카다 규야가 <日本百名山> 을 쓴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김장호시인이 이에 버금가는 일을 했다. 日本百名山> 세계> 한국>
그는 죽기 전 한국의 100명산을 계획하고 한국의 작은 산을 명산으로 격상시키는 미문을 써왔으나 이 일을 끝내지 못한 채 60명산을 끝으로 붓을 놓고 말았다. 손경석 김영도도 평생을 산과 관련된 저술활동을 하면서 수십 권의 산서를 펴냈으며, 이 두 분의 저술활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부화가 김미리는 코오롱등산학교에서 등산수업을 끝낸 뒤 세계 8,000m 14고봉을 화폭에 담기 위해 몇 년째 가녀린 몸매에 무거운 화구를 메고 히말라야 고산군과 알프스 명봉들을 찾아 힘든 행보를 지속 하고 있다.
어떤 유명 산악사진작가는 평생을 산사진만 그것도 흑백사진만 외골수로 찍어오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그것도 사진기 한 대를 둘러메고 산을 찍으며 자기 생을 송두리째 한 가지 일에 바쳤다. 그런 사람이 한국 산악사진계의 대부 김근원이다.
그에게 카메라는 피사체를 담는 기계가 아니라 붓이다. 김근원은 카메라 렌즈로 그림을 그린 화가로 한국 산악사진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오직 사진 찍는 기계로 산의 여러 형태를 포착하고 그것을 그려내기 위해 산으로 갔다. 그것도 삶의 마지막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느 해인가 159cm의 작은 체구에 30kg이 넘는 카메라 가방을 지고 산을 타는 이 작은 거인이 불쌍했던지 아니면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는지. 지나가던 한 청년이 다가와 “선생님, 그 짐 제가 메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순박한 양반이 짐을 건네준 순간 산적으로 변한 청년의 주먹이 날아오고 카메라를 메고 도망쳐 소중한 사진 기재를 모두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의 사진 앞에서면 장엄, 엄숙이란 두 단어가 떠오른다. 컬러를 거부하고 시종 흑백을 고집한 사진 철학을 지닌 그는 렌즈로 한국의 산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그려낸 뛰어난 장인이자 우리 산을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시킨 작가다.
K2와 세계 최장의 발토로 빙하의 장관을 최초로 렌즈에 담은 이탈리아에 비토리오 셀라가 있고, 1,000m의 거벽 하프 돔의 야경을 찍은 엔젤 아담스가 미국에 있다면 한국에는 김근원이 있다. 그의 사진 ‘도봉산 선인 봉’은 국제산악연맹(UIAA) 회보 표지사진으로 실려 한국산의 산악미를 세계 산악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사진은 산을 오르는 방법이고 산을 보는 시각이다. 그는 한국 알피니즘의 발자취를 <김근원의 산악포커스> 에 담아 50년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50년 세월은 갔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이 화집 속에 쌓여있다. 김근원의>
일본의 시라하다 시로오가 히말라야 사진의 세계적인 대가라면 한국에는 장문삼이 있다. 그는 1977년 한국일보가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育?등반대장을 지낸 산 꾼이다. 이후 그는 히말라야의 웅자에 매료되어 뒤늦게 산악사진가로 변신한다.
렌즈를 통해 눈으로 잡아낸 히말라야 고봉들의 우아함을 담기 위해 무거운 기재들을 메고 며칠 사이를 두고 5,000m가 넘는 고봉과 고개를 넘는 발품을 팔아 <히말라야의 빛> 이라는 대작을 출간한다. 그는 이 일을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투자하여 네팔 히말라야 쿰부 지역, 안나푸르나 지역, 마나슬루, 랑탕히말,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등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히말라야의 주된 영상들을 집대성했다. 그의 사진집을 보면 웅장 그 자체다. 히말라야의>
또 한 사람 평생을 고집스레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먼 클라이밍 사진만 찍고 있는 이훈태. 미국 클라이밍 사진의 대가가 가렌 로웰이라면 한국의 암벽에는 늘 그가 서있었다. 로프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 그의 열정은 한국 클라이밍 사진의 새 장르를 개척했다. 그가 40여 년을 목숨 걸고 찍은 사진을 집대성한 <등반 이야기. 산이 내게 남겨 준 것들> 은 한국 암벽등반사의 한 부분이다. 등반>
95년 겨울 필자가 윤재학과 한국 3대 빙벽 중의 하나인 소승 폭 빙벽등반에 나섰을 때 현장에서 그를 만나 멋진 사진 한 컷을 부탁했으나, 등반 도중 폭설이 내려 기대할만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하고 말짱 꽝이 되어버린 일도 있었다. “이훈태 씨! 다음 번 겨울에 멋진 사진 한 장 부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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