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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첩보기관, 2차대전 당시 사이비 점술가에게 놀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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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첩보기관, 2차대전 당시 사이비 점술가에게 놀아났다

입력
2008.03.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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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첩보기관이 사이비 점성술사를 동원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전략을 알아낸다는 황당한 작전을 펼쳤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AFP 통신과 BBC 방송 등은 4일 영국 문서보관소가 공개한 비밀정보국(MI5)의 기밀서류를 인용해 이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했다.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 정부는 정보기관들이 점성술사를 고용한 사실을 알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그 정보를 어떻게 대독 전략에 반영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기밀서류에 따르면 전쟁 기간 ‘현대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자칭한 점성술사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고위 관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의 점성술사는 헝가리 출신의 독일계 유대인 루트비히 폰 볼(1903~1961)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5년 독일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서 그는 루이스 드 월로 개명했다.

그는 2차대전 중에는 대외공작기관인 특수작전집행부(SOE)의 대위로 선전부서에서 근무했다.

폰 볼은 고위 정보 당국자들에게 히틀러의 전속 점성가의 예언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다며 히틀러가 받은 점성사의 충고를 영국이 알게 되면 그의 다음 행보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M15는 폰 볼이 자신의 신분을 헝가리 귀족 후손이라고 사칭하는 등 허풍이 심하고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이라고 관련 정보를 믿는 이들에 경고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정보기관 수뇌부가 폰 볼에 대해 “대단히 기민하고 나치 지도자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하며 그의 말을 맹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40년 SOE는 독일과의 전쟁에 회의적인 미국인에게 히틀러가 패배하고 그 때문에 미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폰 볼로 하여금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하도록 했다. 폰 볼의 미국 순회강연은 대단한 성과를 거뒀으며 그의 말과 인터뷰는 대서특필됐다.

런던으로 귀환한 폰 볼은 스위스의 점성가 카를 에른스트 크라프트가 히틀러에게 제공하는 점성술을 통한 자문을 분석해 활용하자고 군 당국에 제안했다. 폰 볼은 히틀러가 수학적인 계산에 기초를 둔 크라프트의 예언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면서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런 제안은 SOE 책임자 찰스 햄브로, 해군정보국장 존 고드프리 제독 등 주요 정보기관 책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SOE가 폰 볼의 계획을 수용하자 MI5와 MI6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기밀서류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MI6의 보고서는 “부서 내 고위층이 위험하고 허풍선이인 데다가 사기꾼인 폰 볼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신뢰 받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MI5 관계자도 “실제로 폰 볼의 예언 가운데 들어 맞은 것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일치된 것은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누구도 알 수 있는 이탈리아의 참전 정도”라고 증언했다.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히틀러가 패망을 앞두고 자살할 때까지 점성가의 예언 따위에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폰 볼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에 당시 세계 최고를 자부했던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휘둘린 셈이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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