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작은 시골 마을. 손님이라곤 바람에 밀려오는 마른 덤불뿐인 이곳에 한 무리의 이방인이 찾아온다. 제복을 갖춰 입고 무거운 짐을 끌고 있는 이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경찰 악단.
해체 위기에 처한 악단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가깝고도 먼’ 이스라엘에 공연을 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연주가 예정된 도시 ‘페타 티크바’가 아니라 ‘벳 하티크바’라는 외딴 마을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악단이 잘못 찾아온 마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해프닝이다. 젊은 단원 할레드는 남의 데이트 현장에 끼어들어 연애 코치를 해주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대사관에 알리려는 카말은 마을 청년과 공중전화를 사이에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그리고 부인과 사별한 단장은 고혹적인 레스토랑 여주인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인다.
말초신경의 쾌감을 위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다소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담백한 이 영화를 천천히 씹다 보면, 입 속에 달콤한 무엇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은근히 사람을 즐겁게 하는 유머와 인간 관계의 속살을 들춰보는 관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울리는 울 쿨톰의 고아한 아랍음악도 은은한 뒷맛으로 남는다.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이집트인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에란 콜리린 감독은 “국력의 절반을 이집트와의 전쟁으로 쏟아부으면서, 저녁에는 TV로 이집트 영화를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무거운 정치적 메시지 없이도, 평화와 공존을 얘기하는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3일 개봉.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