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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자 내각이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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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자 내각이 걱정되는 이유

입력
2008.03.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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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의 부자 내각을 질타한 말을 듣고 또 부아가 치밀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꼴이다.

지난달 28일 김경한 법무부장관(당시 후보) 청문회에서 김 장관이 7억 2,000만원 상당의 골프회원권 4개를 갖고 있는 사실을 문제삼으면서 이 의원이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이 2억원밖에 안 된다며 “내가 이런데, 나보다 못한 서민들은 어떻겠느냐.

하루종일 길가에 앉아서 장사해도 단돈 10만원도 못 번다”고 한 말이다. ‘단돈 10만원’이라니? 하루종일 길가에 앉아서 장사하는 서민들 아니더라도 하루 10만원 벌기 쉽지 않다.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7년 도시 근로자 가구 월 평균소득이 367만 5,431원이다. 도시 근로자 가구의 절반은 하루에 단돈 10만원도 못 벌고 있는 셈이다.

평균 재산 39억원, 2채에서 5채의 주택 소유, 대한민국 1% 안에 든다는, 새 정부의 내각을 국민들이 비아냥하고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부자라서 그런가. 가진 것 없고 장관 못 된 인생들의 시기심 때문인가. 아니라고 본다. 한국 부자들의 행태가 우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태가 장관으로 뽑힌 사람들,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그들에게서 그대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서 절대농지를 샀다고 했다가 낙마한 환경부장관 후보를 두고 네티즌들은 “술을 사랑했을 뿐 음주운전과는 상관없다”는 기막힌 패러디를 내놨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골프회원권 2개를 갖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사실은 싸구려 골프회원권”이라며 살 때는 4,000만원이었다고 변명했다. 평균적 도시 근로자 가구가 1년 소득을 다 모아야 하는 돈 4,000만원짜리가 싸구려라니, 억장 무너진다.

언젠가부터 “부자 되세요”가 국민적 슬로건이 돼버린 한국 사회, 자본주의 정신과 청부(淸富)의 윤리를 갖춘 부자 아니라도 부자 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부자들이 내각에 들어가서, 정치권력까지 가진다는 사실이다. 생활에 찌들린 국민들이 “경제” 외치는 데 표 찍어주자 이런 부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대통령은 그들의 눈부시게 화려한 학력과 경력과 재산을 한 마디로 검증된 능력이라고 뭉뚱그렸지만 그 능력의 실체는 저열한 부자의 막소리, 표절 의혹, 5공의 잔재, 병역 문제, 이중국적 같은 것들이었다.

정치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한테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막스 베버의 강연을 책으로 묶은 <직업으로서의 정치> 가 이명박 초대 내각을 보는 내내 생각났다. 베버가 이 강연을 한 20세기초의 서구 정당정치는 금권정치에 빠져 부패할 위험성을 보였던 시기였다.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정치를 걱정했던 베버가 시치미 떼고 말한 정치인의 이념형일 뿐이다. 실제 그가 경고한 것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정치판을 이용하는 천박한 정치적 기식자나 포식자”였다.

새벽같이 국무회의를 열어 민생에 고통을 주는 물가를 잡자며 머리를 맞댄다고 해도 국민들이 부자 내각을 걱정스런 눈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하루 단돈 10만원 벌이로 살아가는 국민들은 기식자도 포식자도 원하지 않는다. 베버가 말한 ‘열정과 통찰력으로 단단한 판자에 강하게 천천히 구멍을 뚫는 과정’으로서의 정치, 그 이전에 윤리의 회복부터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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