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진다. 높이 50m의 에스컬레이터 양쪽 벽에는 ‘두 줄 타기, 올바른 안전문화의 시작’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시민 대부분은 두 줄로 탄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서 성큼성큼 오르내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는 서 있는 사람 사이로 지그재그로 간다. 더러 뛰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승강기안전관리원(승관원)과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등이 ‘에스컬레이터 두 줄 타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포스터는 “‘무지한 시민’은 잘 모르겠지만, ‘한 줄 타기’가 사고 주범”이라고 훈계하는 듯하다. 얼핏 보면 지당한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에스컬레이터 한 줄 타기는 1990년대 후반 언론과 시민단체 캠페인을 통해 확산됐으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착됐다.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지만 이 때에도 ‘안전’이 강조됐다. 두 줄로 타면 바쁜 사람이 지그재그로 오르내리며 다른 사람과 부딪쳐 사고가 난다는 점이 반영됐던 것이다.
돌발적인 급정거에 대비해 핸드레일을 꼭 잡고 두 줄로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극히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1초라도 빨리 가야 할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한국은 행인의 빠른 걸음걸이가 자랑거리인 나라가 아닌가. 한 줄 타기는 안전이라는 바탕에, ‘급한 사정’을 용인한 타협점인 셈이다. 우리보다 덜 바쁜 선진국에서도 한 줄 타기가 이런 ‘암묵지(暗默知ㆍTacit Knowledge)’에 따라 에티켓으로 자리잡았다.
에스컬레이터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모주망태나 어린이, 노인에겐 특히 아슬아슬한 곳이다. 하지만 키워드는 안전의식, 이동, 급정거, 핸드레일 등이지 ‘줄’ 자체가 아니다.
한 줄이 두 줄에 비해 위험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 논점 일탈의 오류에 해당한다. 일부에서는 “바쁘면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계단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또 한 줄이 두 줄보다 위험하다면 양 쪽의 사고 변화를 에스컬레이터 대수 비율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데이터는 보지 못했다.
승관원은 최근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급증했다고 했는데, 한 줄 타기가 원인이라면 1990년대 말부터 그랬어야 옳다. 승관원은 “대부분의 나라가 에스컬레이터 한 줄 타기를 중단했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배낭여행 때 선진국에서 한 줄 타기가 정착된 것을 봤는데 웬 거짓말이냐”고 비난 받기도 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놓고 보면 ‘시민사회의 암묵적 합의’를 흩뜨리는 이런 일 외에 진짜 해야 할 일이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려고 에스컬레이터 중 올라가는 방향만 작동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관절은 계단을 내려갈 때 훨씬 무리한다. 관절염 환자에게 내려가는 계단은 고문에 가깝지만 오르는 것은 덜 고통스럽다.
계단 오르기는 운동효과도 크므로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키려면 오르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또 선진국에서는 사람의 자연적 특성에 따라 양쪽 에스컬레이터 중 오른쪽으로 오르내리도록 돼 있는데, 우리는 들쭉날쭉해서 여간 헷갈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과학과 상식, 논리보다는 관료적 계도 마인드와 비논리성이 나란히 두 줄로 서 있는 듯해 씁쓸하다. 그래서 요즘 출근길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가슴에 돌덩이가 매달린 듯, 무겁고 답답하다.
이성주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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