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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매스컴 질병보도 과잉반응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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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매스컴 질병보도 과잉반응 마세요

입력
2008.03.0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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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초반의 남자가 찾아와 진찰을 받았다. 콧물 나고, 열 나고 목이 아픈데 벌써 몇달째 증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끝말이 재미있다. “선생님 제가 혹시 조류독감에 걸린 것 아닐까요?”

필자는 육식을 채식보다 선호해, 강연할 때나 환자를 진찰할 때 빼놓지 않고 “고기 많이 잡수세요. 토끼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채식, 채식 합니까?”라고 충고한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서 “어떻게 이름깨나 있는 의사가 채식보다 육식을 권하느냐”고 말한다. 또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데…”라고 한다. 광우병이 무서워 육식을 피하는 고교 동창들도 자주 본다.

나는 앞으로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패스트푸드도 먹이고 인도음식, 멕시코음식, 서양음식 등 다양하게 먹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는 피해야 할 음식이고, 엄마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비만이 되고, 간도 나빠지고, 동맥경화가 온다”고 아는 척하며 필자를 이상하게 여긴다.

또 필자가 튀김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유명 의사가 어떻게 감자튀김을 먹느냐? 트랜스지방도 모르느냐?”고 핀잔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참 유식한(?) 사람들이다.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사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한마디로 넌센스, 웃기는 일이다.

조류독감이 각종 매스컴에 한창 오르내리면서 오리와 닭 소비가 줄어 생산업자도 음식점도 파리를 날리다못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때가 있었다. 그때 농협의 요청으로 조류독감 걱정 말고 마음껏 닭과 오리를 드시라는 대국민 캠페인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필자는 사람들에게 “오리나 닭 같은 조류가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말했다. 당연히 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조류독감은 조류에 생기는 병이지 인간에게 생기는 병이 아니어서 나 같은 의사의 영역이 아니라 수의사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TV에서 조류(오리, 닭)가 수없이 살처분되는 것을 보고 무서워 떨면서 조류를 사먹지 않았다. 이런 과장 보도는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다. 사람이 조류독감을 걱정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소가 광우병으로 인해 비실비실하다가 쓰러져 죽는 장면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만일 내가 저 병에 걸리면 큰일인데 하는 끔찍한 생각을 갖게 된다. 광우병에 대해 아직까지 이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광우병을 진찰하고 치료한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광우병은 듣기는 들었지만 본 적이 없는 병이다. 이것도 소에 생기는 병이지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 아니다. 즉 광우병(狂牛病)이지 ‘광인병(狂人病)’이 아니다. 역시 필자 같은 의사 소관이 아니라 수의사 소관이다. 문제는 매스컴의 자극적인 보도로 인해 소가 아닌 인간이 지레 겁 먹고 소고기를 안 먹는 것이다. 아주 희귀하니 만일 소고기를 먹어 인간이 광우병에 걸렸다면 의학에서 말하는 ‘사례 보고’감이다.

필자는 햄버거를 아주 좋아한다. 미국에서 전공의 시절 시간이 나면 가끔 가족을 데리고 햄버거가게에 가서 즐겼고, 귀국해 지금까지 점심으로 자주 햄버거를 먹는다. 그런데 갑자기 패스트푸드라는 말이 생기더니 비만, 동맥경화, 간기능 장애의 주범이라고 매스컴과 시민단체에서 떠들어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넌센스요, 기절초풍할 일이다. 운동부족이 문제이고, 패스트푸드를 주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습관이 문제다. 패스트푸드는 주식이지 간식이 아니다.

강연 도중 가끔 청중에게 질문한다. “혹시 어렸을 때나 지금도, 튀김을 먹거나 버터나 마가린 등에 밥을 비벼 먹은 적이 없느냐?”그러면 거의 대부분 “그런 적이 있었고 참 맛이 최고였다”고 답한다. 그때 필자는 바로 그것이 트랜스지방인데 혹시 암 걸린 사람, 병 나서 돌아가신 분이 있냐고 물으면 “와”하고 웃는다.

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설명했지만 이외에도 환절기 건강이 어떻고, 일교차가 어떻고, 빌딩증후군이 어떻고, 냉방병이 어떻고 등등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는 질병을 필자는 ‘매스컴 병’이라고 부른다.

이 병은 거의 실체가 없으면서, 매스컴이 만들어내고 그것을 본 시청자나 독자 등이 괜히 걱정하는 병인데, 필자 같은 의사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매스컴 병은 그저 만화책 읽는 정도의 흥미는 가져도 무방하다. 일반인의 생활, 사고방식, 건강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살자.

윤방부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ㆍ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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