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여성들이 산부인과 검진을 기피, 병을 키우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적지않다.
한 여성단체가 미혼 여성 1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170명)가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병원에 가 본 사람은 소수(26%ㆍ50명)에 그쳤다.
다른 조사에서도 10대 여학생 가운데 36.1%가 각종 부인병에 시달리지만 산부인과를 찾는 경우는 4.1%에 불과했다. “처녀가 웬 산부인과”라는 주변의 시선과 신체 노출에 대한 수치심, 검진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최두석 교수는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사춘기, 미혼 여성들이 조기 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방치하면 결혼 후 불임, 유산, 부인암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학병원들은 이처럼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는 사춘기, 미혼 여성들을 위해 클리닉을 마련하고 있다. 강남차병원은 매주 화ㆍ목요일 오후 6시 초ㆍ중ㆍ고교생을 위한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운영하며, 삼성서울병원은 ‘사춘기ㆍ미혼여성클리닉’, 서울아산병원과 제일병원은 ‘미혼여성 클리닉’을 개설했다.
■ 대다수 미혼 여성, 부인과 질환으로 고통
강남차병원 여성검진센터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검진을 받은 미혼 여성 148명을 분석한 결과, 79.7%가 부인과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된 여성이 18.6%나 됐고, 다낭성 난소증후군과 자궁근종 환자도 각각 14.4%, 11.9%였다. 이밖에 질염(10.2%), 자궁내막 이상(6.8%), 난소종양(3.4%), 췌장ㆍ난소암 가능성을 보이는 종양 표지자가 정상치를 웃도는 여성도 7.6%였다.
대한부인종양학회 조사에서도 초ㆍ중ㆍ고 여학생이 가장 많이 겪는 질환이 생리통(67.7%), 생리불순(20.2%), 질염(3.1%)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젊은 여성이 자궁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환경과 생활의 총체적 변화 때문이다.
대표적 여성암인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는 대부분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 최근 젊은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의 여파로 그 발병 연령이 낮아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국내에서 매년 4,300여명이 걸리며, 사망자도 2005녕의 경우 1,067명이나 됐다.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박종섭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30~50대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지만 성생활 시작 연령이 낮아지면서 20대 여성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HPV 감염 이후 자궁경부암으로 악화되기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걸리기 때문에 40대 이후 발병하는 자궁경부암은 20~30대에 감염된 HPV가 원인일 수 있다.
암 예방 백신은 성관계가 없으면 12세부터 맞을 수 있으며, 한국MSD가 출시한 ‘가다실’과 올 가을 GSK가 출시할 ‘서바릭스’를 모두 3회 맞으면 된다. 성관계를 시작한 여성은 자궁경부암 검사, 초음파검사, 유방촬영, 유방 초음파검사를 1년에 1차례 받으면 좋다. 박 교수는 “백신 접종이 활성화하면 20~30년 뒤 암 발생ㆍ사망률이 20~30%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기 검진이 악화 막는다
난포가 포도송이처럼 되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호르몬 변화와 관련 있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성석주 교수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비만이거나 생리불순인 사람에게 많고, 털이 많이 나는 등 남성적 외모를 가진 여성에게 나타난다”며 “남성,여성 호르몬 증가 등 호르몬 균형이 깨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질염은 주로 세균성 질염과 곰팡이성 질염이 원인이 되는 대표적 부인과 질환이다. 세균이 살기 좋은 환경, 즉 옷이나 생리도구가 질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나일론 속옷이나 꽉 끼는 청바지 등은 땀의 발산을 막아 몸을 습하게 만든다. 탐폰 루프 등과 같은 생리용품 사용, 질 세정제 과다 사용도 질염을 일으킨다. 질염은 방치하면 골반염이나 신우신염 등으로 악화할 수 있다. 사춘기에는 생리불순이나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성관계를 시작하면 매년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는 게 좋다.
자궁종양은 자각 증상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평생 병을 안고 살아가기 쉽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박희진 교수는 “초경이 시작되면 자각증상이 없더라도 어른은 1년에 한번씩, 미성년자는 3년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생리통이 심하거나 생리불순이 있는 10대 여학생들은 초음파 검사와 빈혈 예방을 위해 1년에 한번 혈액검사가 필요하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생리불순은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불임에 이르기까지 다른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주의깊게 체크해야 한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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