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톈진과 M&A… 經濟수도도 노려
지난 25일 베이징 하이딩취(海淀) 중관춘(中關村) 거리. 한 때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며 세계 최첨단 정보기술(IT)산업의 경연장이었던 이 곳은 현재 수 십만명의 인파가 상점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쇼핑가로 변한 지 오래다. 연구개발과 신제품의 시험장이 전자상점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중관춘 건너편에 위치한 상디(上地)로 눈을 돌리면 비로소 베이징의 또 다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상디는 중국의 MIT로 불리는 칭화(淸華)대학과 베이징(北京)대 등 70여 명문대가 있고, 중국과학기술원 산하 전자연구원과 반도체연구소 등 2백여개의 연구소에서 50만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력이 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투자한 R&D단지가 이곳에 몰려있어 중국 IT산업의 두뇌역할을 하고 있다.
칭와대 출신으로 상디에서 휴대폰 기기를 개발하고 있는 왕청(29ㆍ王靑)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상디에서 개발된 기술은 중관춘에서 상용화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제는 첨단산업기지로 개발 중인 텐진 빈하이신구로 이동해 생산되고 텐진북항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최고의 인적자원을 보유한 베이징과 첨단 제조업 중심기지로 리모델링되고 있는 텐진이 역할 분담을 통한 경제구조 재편으로 중국의 신 경제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 한마디로 중국 정치 문화 중심지였던 베이징이 텐진과 경제 통합을 통해 중국의 새로운 발전모델이 될 경제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과 텐진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도권 경제 통합은 단순한 경제 규모 키우기를 떠나 산업구조 재편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베이징과 텐진은 중국의 4대 직할시로 정치적 위상은 여전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선전이나 상하이에 밀려 중국의 중심에서 멀어져 간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 텐진은 한때 낙후된 산업구조로 인해 ‘중국의 대농촌’이란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두 도시는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착수해 도시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벌였다.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이 중심인 베이징은 단순제조업을 인근 소도시로 이전시키는 동시에 금융과 첨단기술 인력 양성을 통한 R&D중심도시로 거듭나고, 텐진은 베이징의 기술개발 성과를 첨단산업 육성으로 잇는 ‘무대’이자 ‘물류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베이징-텐진경제권은 향후 동북3성과 허베이(河北)성, 그리고 산둥(山東)성 등을 포함한 환보하이만(環渤海灣) 경제권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최근 베이징시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이제 자본과 기술 뿐 아니라 핵심기술을 이용하는 노하우까지 전해 주지 않으면 투자를 받지 않을 정도다. 무늬만 R&D센터가 아닌 세계유수 기업의 핵심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센터를 베이징에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의지는 이미 중국정부가 올 초 발효된 ‘신기업소득법’에 잘 나타나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내ㆍ외자 기업에 각각 33%, 15%로 차등적용 되던 기업소득세율이 25%로 단일화되는 대신 하이테크와 서비스, R&D센터는 15%로 유지한다는 것이 골자다. 핵심기술 산업육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베이징 경제권력의 미묘한 이동도 주목할 만하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외교관은 “경제권력이 당과 상무부에서 재경부, 중국인민은행, 발전계획위원회 3대 축으로 이동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리우진쟈(劉金賀) 중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베이징은 단순한 정치 문화의 중심지를 넘어 텐진과 경제권 통합으로 경제중심으로 거듭나면서 앞으로 동북3성 산둥성, 그리고 한반도까지 포괄하는 동북아시아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中 신성장 엔진 빈하이 신구
'1980년대 선전, 1990년대 상하이 푸동이라면 2000년대엔 빈하이(濱海) 신구다.'
중국 베이징 수도권의 관문인 텐진시 동부연해지역에 자리한 빈하이신구는 중국정부가 79년 개혁 개방 이래 추진해 온 경제특구 건설의 마지막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개발면적만 2,270㎢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3.75배에 달한다.
특히 빈하이신구는 상하이를 비롯한 창장(長江)경제권과 선전 특구를 핵심으로 한 주장(珠江)경제권에 비해 낙후된 중국 동북부 지역의 경제를 이끌 핵심 거점이자, 중국경제의 선진화를 이끌 신성장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6년 발표된 중국정부의 마스터 플랜을 보면 빈하이신구는 2010년에는 베이징-텐진-허베이성(河北省) 도시권과 환보하이만(環渤海灣) 경제권의 중심으로 산둥-동북 3성까지 포괄하는 중국 북방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주룽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 시절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행장을 지냈고, 선전과 칭다오 개발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다이샹롱(戴相龍)을 텐진시장으로 임명해 중국 지도부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개발계획도 중국경제의 미래상이 압축돼 있다고 할 만큼 대담한 프로젝트가 즐비하다. 중국경제의 핵이라 불리는 상하이 푸동보다 2개 많은 7개의 기능구를 만들고, 각 기능구에는 첨단기술산업단지, 금융 및 관광 특구, 대규모 항만과 국제공항 설립이 계획돼 있다.
빈하이신구는 이를 통해 매년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달성해 2010년에 지역 국내총생산(GDP) 450억달러, 연간 항만처리량 1,200만 TEU(1 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항만 처리량은 2007년 부산항의 연간 처리량(1300만 TEU)과 비슷하다. 빈하이 공항도 2005년 연간 110만명 수준이던 여객 수송능력을 2015년 65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텐진시는 이 같은 빈하이 신구 개발을 통해 201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12%를 달성하고 1인당 GDP 7,000 달러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지역에 둥지를 틀기 위한 글로벌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이미 포브스 선정 500대 기업 중 197개사가 진출해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에어버스는 거대 중국 시장을 겨냥해 2009년부터 항공기 생산에 들어가고, 싱가포르는 빈하이신구 30만㎢에 이르는 광할한 면적에 에코시티를 건설중일 정도로 외국자본의 투자가 몰려오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한상국 서기관은 "향후 5년 내 빈하이 신구는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상하이 푸동을 넘어서는 중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위용딩 中사회과학원 소장
"베이징과 텐진을 중심으로 한 환보하이만(環渤海) 경제권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곳이다. 앞으로 한국과 협력하는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다."
중국정부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위용딩(60ㆍ余永定) 세계경제정치 소장은 "상하이권과 홍콩ㆍ 선전권은 그 동안 빠른 성장을 해왔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며 "반면 베이징과 텐진 등 수도권은 중국 정부의 지원과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베이징-텐진 경제권의 성장에는 한국과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소장은 "한국은 전자와 자동차, 조선 등에서 중국보다 한발 앞서 있다"며 "자본시장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을 잘 갖추었고, 상대적으로 중국보다 개방돼 있어 양 경제권의 협력이 가시화되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 소장은 한국 대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중국은 한국 대기업의 발전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10년간을 돌이켜 볼 때 그들의 선택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한국기업의 발전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후의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 소장은 "중국에 수많은 외자 기업들이 몰려들어 규모가 커지고 있고,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한국은 중국과 경쟁하기보다 중국시장을 이용하는데 관심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중국은행 통화정책위원이자 중국금융의 핵심브레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한국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해 "가능성이 작으며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지 못 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거대한 중국과 외국자본이 현재로서는 한국 금융시장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거대산업 자본은 홍콩시장을 통해 세계로 나가고 있고, 외국자본은 상하이와 베이징을 통해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위 소장은 "한국은 굳이 세계적인 금융허브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중국시장을 겨냥한 금융센터만으로도 충분히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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