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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과연 '일말의 책임'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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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과연 '일말의 책임'뿐인가

입력
2008.03.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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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참담한 일이 터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뽑은 장관 후보자 가운데 3명이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지난달 24, 28일 잇따라 사퇴한 것이다.

29일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자유투표 방식으로 처리해 줌으로써 3명이 물러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위험 수위를 오르내리다 겨우 살아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해 임명이 이달 11일 이후로 미뤄졌다.

이 대통령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며 내놓은 장관 후보자 중 문제 인물이 이토록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정부가 2만5,000여명 분량의 인사파일을 정부기록보관소로 넘겨버리는 바람에 파일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해졌는데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쉽지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좋은 인사를 위해 인사파일 보겠다고 하는데 어느 멍청한 정당이 이를 거부하겠는가.

청와대는 또 당선인이 조각 검증을 할 수 있는 시스템(기구와 제도)이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런데 과거 관련 법을 도입하려 할 때 이를 반대해 무산시킨 것은 이 대통령이 속해 있는 한나라당이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야당의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로 해석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절대 아니다. 국민들은 장관 후보자 관련 의혹을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야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에 저항할 땐 발목잡기라는 청와대의 공격이 먹혔지만 이번엔 전혀 안 통했다.

이 대통령은 29일 이번 사태가 정리된 뒤 “다소 출발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었다. 우리 자체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말의 책임’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뤄 청와대의 상황 탓, 제도 탓, 야당 탓에 상당 부분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는 ‘일말의 책임’이 아니라 ‘결정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장관 후보자를 뽑으면서 도덕성을 무시하고 소위 ‘능력 위주’로 간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공직 인사에 대해 “능력 있고 국가관이 뚜렷한 사람을 뽑으라”는 기준을 제시해 도덕성에 대해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도덕성을 규제처럼 거추장스럽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도덕성이 부족한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비리를 저지르고 국민을 기만하는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만고의 역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도덕성은 능력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능력을 평가할 때 여러 요소를 고려할 텐데 도덕성을 하나의 요소로, 아니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반영해야 한다.

이 대통령 특유의 ‘불도저식 업무 추진’도 이번 사태를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 불도저식이란 지도자가 정하면 아랫사람은 따라가는 방식이다. 그는 이번 인사를 거의 혼자 결정했다.

그리고 독단 때문에 잡음이 생기더라도 국민들이 도덕성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고 그냥 따라와 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국민은 불도저식 인사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는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대통령은 힘이 없어 언덕도 오르지 못하는 불도저는 폐차 처분하고 취임사에서 말했듯 ‘국민을 섬기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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