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지금 읽으라고 갖다 놓은 거야?”
1997년 중학교 과학 교사에서 과학 전문 잡지의 기자로 직업을 바꾼 그에게 편집장의 냉담한 반응은 너무나 큰 상처였다. ‘내가 미쳤지, 이렇게 고생하고 이런 욕을 들으려고 직장을 바꿨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당장 사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꾹 참으며 속으로 이렇게 곱씹었다. 3년 동안 죽어라 배우고 일해서 정말 훌륭한 과학기자가 되었을 때 ‘제발 있어줘’ 라는 말을 들으며 사표를 던지리라. 장경애(40) <과학동아> 편집장의 첫 출발은 이랬다. 과학동아>
그 후로 장 편집장은 1%를 위해 달렸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1%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노력했죠. 큰 기획부터 세세한 팩트를 챙기는 것까지요.” 98년 그는 ‘무인도에서 아무 것도 없이 살아 남으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기획기사로 냈다.
이 기사를 본 한 출판사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단행본을 냈는데 베스트 셀러가 된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 (뜨인돌) 시리즈가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는 50명을 인터뷰한 단행본 <10년 후 나를 디자인한다>(동아사이언스)도 발간 3개월 만에 3쇄를 찍는 호평을 받고 있다. 로빈슨>
이공계 학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기획의 결실이었다. 1%의 차이를 위해 달려온 장 편집장의 노력은 3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는 ‘이달의 과학문화인상’ 수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과학 전문 잡지란 도대체 무엇을 담아야 할까. 대입 시험에 날만한 심층 과학 원리, 심심풀이로 읽을만한 생활 속 과학지식, 첨단 연구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장 편집장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지만 결국 “세상이 변화하는 방향과 가속도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과학잡지의 나아갈 바라고 말한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넘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자연현상을 보는 데에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이 있는지가 과학 전문 잡지가 제공해야 할 지식입니다.”
장 편집장은 서울대 과학교육학과를 나와 3년 동안 여중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일도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훌륭한 인재가 자라는 숲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씨앗만 있으면 좋은 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숲이 있어야 경쟁하면서 나무가 강건하고 곧게 자랍니다. 과학 잡지를 만드는 일은 그런 숲을 조성하는 것이죠.”
숲을 가꾸는 일에 대한 장 편집장의 긍지와 자부심은 대단하다. 10여년 전 자신이 들었던 것처럼 그는 후배들에게 자부심과 열정을 다그친다. “이 기사 네 이름 달고 나가는 건데 이렇게 써서 부끄럽지도 않니?”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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