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가 통일되지 않아 혼란스럽지만 작곡된 당시의 악기와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을 원전연주, 정격연주, 시대악기 연주 등으로 부른다. 이 글에서는 시대악기 연주라 하겠다. 이런 트렌드가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18세기, 즉 바로크 후기와 고전시대 음악이다.
시대악기 연주에 매료된 팬들이 늘어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추론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연주자의 개성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악보에 많은 정보를 표시하지 않았다. 악보에 없는 것은 당대의 원칙에 따라, 혹은 즉흥연주로 메워나갔다.
악기도 오늘날과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충분한 답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연구를 통해 빈 칸을 맞춰나가는 퍼즐게임의 양상을 띄는 것이다.
마치 부족한 사료의 근거를 여기저기에서 들춰내고 연결고리를 만들어 고대사를 연구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작업처럼 말이다. 이렇게 연주자나 단체마다 강한 주관을 갖고 있으니 감상자 입장에서도 그 다양성을 즐기고 논리를 따라가는 묘미가 상당하다.
영국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한 바흐의 <요한 수난곡> 공연(2월 28일, 예술의전당)에 다녀왔다. 오케스트라 18명에 합창단원은 겨우 6명이었다. 여기에 독창자 6명이 합창에 가세하는 방식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시대악단 바흐 콜레기움 재팬도 이런 식으로 <요한 수난곡> 을 공연한다. 요한> 요한>
큰 스케일의 <마태 수난곡> 이었다면 문제가 달랐겠지만 단아한 규모와 그윽한 음향에 익숙해지면서 뒤로 갈수록 감동이 점증되었다. 독창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시대악기 연주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가들이 많았으나 리더로서 복음사가를 부른 마크 패드모어를 비롯하여 모두가 전체 그룹의 일원일 뿐이었다. 마태>
연주 시작 전에 성우가 요한복음의 첫 다섯 절을, 1부와 2부 사이에 시편 22편과 T.S. 엘리엇의 시를 낭송한 것은 시대악기 연주와 무관한 것이었다. <요한 수난곡> 을 끝까지 부른 다음에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라틴어 성가를 부른 것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러나 예상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요한>
시대정신을 되살리는 단계를 넘어 관객과의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토록 고풍스러운 연주를 펼치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조차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놀라웠다. 또한 클래식 공연계에 교과서적인 틀을 벗어난 새로운, 그러나 진지한 시도가 늘어나는 날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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