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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없는 자원전쟁/ <상> 세계 곡물 수급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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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없는 자원전쟁/ <상> 세계 곡물 수급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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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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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인류의 전쟁은 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자원은 곧 생존이었던 만큼, 먹고 쓸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일이 흔했다. 총칼은 없지만, 세계는 지금 또 다른 자원 전쟁에 돌입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밀 가격이 하루 20% 이상 폭등하는 현실은 자원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총성 없는 전쟁의 결과다. 이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 빈국들은 자칫 '자원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자원 전쟁의 현황과 대책을 3회에 걸쳐 살펴 본다. /편집자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달 중순 펴낸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곡물 비축량이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가파른 오름세를 타던 국제 곡물 가격은 더욱 급등하기 시작했다. 공급 부족에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투기와 사재기가 극성을 부렸다.

곡물 수출국들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이 자국 물가 안정을 위해 3월부터 밀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었다. 국제 밀 가격은 하루 25% 넘게 치솟았다. 최첨단을 걷는 21세기에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식량(곡물)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핵 폭탄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최근 세계 각국이 식량을 무기화하고 나선 배경은 수급 불균형이다. 과거처럼 흉작 등 공급 부족이 주 원인이라면 증산 등을 통해 단기 극복이 가능하겠지만, 요즘의 곡물가격 상승은 수요 급증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그 원인도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만큼 단기전으로 끝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1차적 원인은 옥수수와 콩 등을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 개발 열기다. 배럴 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 시대에 바이오 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 아래 강대국들이 너도나도 곡물 재고를 소진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FAO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오 에너지 생산을 위해 매년 최소 8,100만톤의 옥수수를 투입할 계획이다.

연 10% 안팎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각종 곡물을 블랙홀처럼 빨아 들이고 있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역시 국제 곡물시장 수급 불균형의 주범이다. 공급 측면의 문제도 구조적이다.

최근 몇 년간의 흉작은 기상 이변 탓이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패턴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달러화 약세 기조 속에 투기 자금이 곡물시장에 몰리면서 공급 부족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수급 불균형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자, 주요 수출국들이 곡물을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인도 우크라이나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곡물자원 부국들의 수출 제한 조치가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옥수수(2006년 11월)와 밀(2007년3월)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한 이후, 세르비아와 우크라이나, 인도 등이 밀 옥수수 콩 등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에 들어갔다. 올 들어서도 중국이 새해 첫날부터 곡물에 대한 수출관세 부과와 수출 쿼터제를 시행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고, 세계 5위의 밀 생산국 러시아도 1월 말 소맥 수출세를 10%에서 40%로 대폭 높였다.

여기에 카자흐스탄까지 가세하면서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주요 수출국이 수출 제한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국 내 물가 상승 억제이지만, 식량자원을 무기화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최근의 곡물 전쟁이 더욱 위협적인 것은 국제 경제 불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경기 위축 우려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곡물 가격이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애그플레이션이 확산될 경우 경제는 깊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명환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곡물 수급 상황이 당분간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처럼 곡물 자급률이 낮은 나라가 안정적인 해외 공급망을 미리 확보해두지 않는 한 마땅히 손 쓸 수 있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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