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에는 가보 같은 책이 하나 있다. 책가위가 닳으면 계속 덧씌워 더덕더덕 하고, 책의 앞부분은 더욱 마모되고 닳아서 책장을 넘기는 끝부분 손잡이 부분은 흉물스럽게 손때가 묻은 책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필시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등서하여 자여손(子與孫)을 가르치시려고 만드신 책임에 분명한데, 율곡 이이선생의 저작인 <격몽요결(擊蒙要訣)> 이라는 책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
1898년생이신 우리 조부님 형제분들이 배우기 시작하여, 우리 아버님 5형제분들은 분명히 그 책으로 어린시절에 한문을 읽혔고, 해방 후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 6형제와 4촌 형제들 몇몇도 그 책으로 글을 배웠던 것을 우리가 목격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그래서 최소한 3대에 걸쳐 그 책이 소년들의 교과서로 활용되었기에 그처럼 낡고 닳은 책이 된 것이다.
“성인이나 현인들이 어떤 마음을 지녔나를 알아보는 일과, 착한 일은 본받고 악한 일은 경계삼아야 하는 내용이 모두 책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聖賢用心之跡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라는 대목이 그 책의 ‘독서장(讀書章)’이라는 부분에 들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낮에는 학교에서 배우고 밤에는 집에서 한문을 배우는데,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달에 걸쳐, 제대로 배운 책이 그 책이다. 할아버지께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가르쳐주신 덕택으로 지금도 외우고 있는 부분이 그 대목이다.
그 책을 배운 뒤 벌써 60년 세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는데,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율곡선생이 주장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설명이다. 매우 공리적인 논리이지만, 고전을 통해 옛 성현들의 마음의 자취나 생각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기 위함이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선은 따르고 악은 경계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독서의 효과임에 분명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배부르게 먹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욕심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를 생각하고 생각의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보다 더 높은 삶의 가치를 이룩했던 학자들의 저서, 만인의 모범이자 인류의 스승인 성인이나 현인들의 용심(用心), 즉 사유와 정신세계를 알아보는 일은 독서 아니고는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점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율곡의 독서론은 그래서 평생토록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격몽요결> 이라는 책도 일생동안 머리맡에 두고 살아간다. 격몽요결>
박석무ㆍ한국고전번역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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