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네티즌들이 ‘나훈아 사태’처럼 근거없는 악성 소문을 퍼뜨리다 못해 특정 개인을 공격 타깃으로 삼아 ‘인격 살인’까지 서슴지 않아 정부는 물론, 관련기관,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00년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에서 포수로 활약하다 경기 중 쓰러져 식물인간이 돼 8년째 투병 중인 임수혁(39) 선수의 가족들은 최근 한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티즌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일부 네티즌들이 임 선수와 그 가족들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테러성 악플’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임 선수이기에 가족들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그나마 “이런 악플러들은 반드시 검거해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네티즌의 연락이 없었다면 악플 게재 사실조차 모를 뻔했다.
최근 한 야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터넷 상에 올라온 글은 “임수혁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것은 잘된 일”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악플에서부터 “최요삼 선수처럼 장기기증 하지 그래”등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를 알지도 못하는 무지한 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막가파’식 악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글이 네티즌들에 의해 여러 포털사이트 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캐나다 간다. 잡아봐라”“고소한 XX들 다 죽여버린다”고 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계속 악플을 남기고 있다. 이 같은 악플을 접한 상당수 네티즌들은 “임 선수를 욕하는 악플러를 처벌해달라”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힘든 가족들에게 정말 너무 한다”“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저건 아니다”는 반성과 비난의 글을 올리고 있다.
“도대체 의식 없이 누워있는 수혁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욕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하는군요.”
임 선수의 부친 임윤빈(71) 씨는 2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올린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마음을 추스려 보지만 아직도 수혁이와 우리 가족들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악성 댓글의 충격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며 “병상에 있는 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런 글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속울음을 삼켰다.
임 씨는 “더 이상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악플러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법적 대응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면서 “정부나 관련기관, 포털 등 인터넷 업체들이 인터넷상의 무분별한 악성 댓글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선수에게 ‘장기 기증을 하라’는 악플이 인터넷에 확산되자 급기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까지 사회적 파장 차단에 나섰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는 이날 자료를 통해 “임수혁 선수는 뇌사 상태가 아닌 식물인간 상태로, 설령 가족이 동의한다 해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없다”며 “모든 국민이 임 선수가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악플은 유명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피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악플러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면서 순간순간 재미와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악플을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숨겨진 공간을 이용하는 비겁한 행위’로 규정하면서 처벌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악플러들은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받게 되는 만큼 장난처럼 더 과격하게 글을 올린다”며 “하지만 악플 대상자들은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것과 같은 충격을 받게 되는 만큼 악플을 분명한 범죄 행위로 보고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뇌사와 식물인간
뇌사는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에 손상을 입어 심한 혼수 상태에서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로, 장기 기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는 대뇌의 일부만 손상돼 무의식 상태에서 목적 없이 움직일 수 있다. 또 자발적 호흡이 가능해 수개월∼수년 후 회복 가능성이 있어 장기기증 대상이 될 수 없다. 실제 십년 가까이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의식을 되찾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박관규 기자 qoo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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