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를 통틀어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선수는 딱 둘뿐일 것이다. ‘농구 천재’ 허재(43ㆍKCC 감독)와 ‘야구 천재’ 이종범(38ㆍKIA). 허재는 ‘야구의 이종범’이었고, 이종범은 ‘농구의 허재’였다.
이종범은 90년대 한국프로야구의 아이콘이었다. 2001년 8월 국내에 복귀한 뒤로도 그의 실력과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이종범 가는 곳에 구름관중이 몰렸다.
하지만 이종범은 2006년부터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더니 지난해엔 데뷔 후 최악의 성적(타율 1할7푼4리, 1홈런, 18타점, 3도루)을 냈다. 연봉도 지난해 5억원에서 올해 3억원이나 깎였다.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 참가중인 이종범을 29일 만났다. 이종범은 “올해도 안 되면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겠다. 내가 생각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주위에서 하라고 해도 그만두겠다”며 말끝에 힘을 실었다.
노력 앞에 천재는 없다
“한참 잘할 때 천재라는 소리 많이 들었죠. 하지만 노력 앞에 천재는 없더라고요.” 이종범은 최근 2년 동안의 부진은 나태함과 자만에서 비롯됐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내가 이종범인데 설마 안 될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했다. “올해 잘해서 마흔 살이 되는 내년까지는 선수로 뛸 겁니다.”
천재의 변신은 무죄
이종범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다. 귀 높이까지 한껏 치켜들었던 방망이를 주먹 크기만큼 낮췄다. 어깨너비의 1.5배쯤 되던 스탠스도 한 족장(足長) 줄였다. 방망이 높이를 낮추면서 스윙궤도가 간결해졌고, 스탠스를 좁히면서 허리 회전이 빨라졌다.
“솔직히 전성기만큼의 스피드나 힘이 안 되는데 변해야 살지 않겠습니까?” KIA 박흥식 타격코치는 이종범이 타격폼을 바꾼 뒤 타구의 질이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올해는 정말 ‘이종범’다운 야구를 할 거라는 얘기다.
은퇴 후엔 지도자
이종범은 최근 몇 년 동안의 부진이 지도자생활에 앞서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모든 선수가 자신처럼 타고난 천재성으로 야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공부를 한 셈이죠. 지도자가 되면 재미 있는 야구를 할 생각이에요. 제 야구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재미 있는 야구거든요. 그 전에 선수생활의 끝을 잘 매듭 지어야지요. 하여튼 올해 지켜봐 주세요.”
가고시마(일본)=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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