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오는 사람들의 회한과 덕담, 각오와 주문으로 부산한 관가에서 한 고위 관료의 이임사가 잔잔한 반향을 낳았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이 엊그제 28년간의 공직생활을 접으면서 남긴 '5가지 반성'이 그것이다.
외환위기 카드대란 부동산광풍 등 고비 때마다 대책반장을 맡을 만큼 능력을 인정 받고 위아래의 신망까지 두터웠던 그이기에, 오랜 정책경험을 바탕으로 전해준 얘기는 새 정부 담당자들도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그는 우선 '섭공호룡(葉公好龍)'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 미래과제에 성실히 성실히 맞서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용 을 좋아한다던 섭공이 막상 실제 용을 보고는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 기절해 버렸듯이, 노령화ㆍ저출산ㆍ기후변화 등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꿀 미래과제를 두고도 그 실체와 위험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외환위기부터 최근의 서브프라임 사태까지 매번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후대의 교과서가 될 만한 매뉴얼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발상의 전환에 미흡했다는 세 번째 반성이다. 그는 "지금은 우물에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자기 주위에 우물담이 생겨 저절로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정책이란 결국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인데, 과거의 틀에 갇히면 정책 효과가 반감되거나 역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는 관료생활 중 뉴욕 아일랜드 두바이 등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고품질 정책을 몇 개나 만들었는지 자문하고, 끝으로 공직자의 자기희생과 무한책임을 주문했다.
이런 얘기들을 '뒷북 치는 자기 변명이나 합리화, 혹은 처세술의 일환'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눈도 있을 것이다. 또 각각의 반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례가 적시되지 않아 공허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공직은 나라의 현재를 지키는 초병이자 미래를 여는 첨병이며, 안락의자가 아닌 가시방석'이라는 인식은, 김 전차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그래서 새 정부에 대한 청문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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