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는 어느 소설에서 사랑과 허영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그럴싸한 에피소드로 처리한 바 있다.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내 식으로 바꿔 상황의 테두리만 들추겠다.
평범한 여자가 있다. 평범한 남자라 해도 좋다. 그녀에게 또는 그에게 연애의 두 가지 방식이 선택지로 제시된다. 하나는 그녀 또는 그가 일세의 명망가와 온전히 하룻밤을(또는 며칠 밤이나 몇 달 밤을) 지내되, 세상 사람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다. 말하자면 꼭꼭 감춘 연애다.
머리와 꼬리만이 아니라 몸통까지 감쪽같이 감춰서 아무도 들출 수 없는 연애. 또 하나는 평범한 그녀 또는 그가 예의 그 명망가와 아무런 낭만적 관계도 맺지 않았지만, 당대 사람들이 그들을 연인 사이로 잘못 알고 있고 후세 사람들도 그들을 연인으로 기억하는 경우다. 말하자면 그릇되게 드러낸 연애다. 남들이 들추려 하지 않았는데도 허랑히 드러나 버린 연애.
내 기억이 옳다면(자신이 없다. 언제부턴지 시간은 내 기억을 나 모르는 데다 감춰버린다), 쿤데라 소설의 평범한 등장인물은, 여성이었는데, 두 번째 방식을 골라잡았다. 다시 말해, 저명한 남자(괴테였던가?)와 실제론 아무런 로맨스가 없었으면서도 그 남자의 연인으로 거론되고 기억되는 쪽을 선택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나는 내가 이자벨 아자니(내 눈엔 충분히 미인이고, 독자들도 그 이름을 알고 계실 만큼 유명하다)와 끈끈하고 축축한 밤들을 보낸 한 때의 연인이지만, 세상 사람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내가 사랑스런 이자벨과 함께 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녀의 연인으로 떠받드는 것. 지금이라면 헤아려볼 것도 없이 첫 번째를 고를 것이다. 술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술이지, 병(에 붙은 라벨)이 아니므로. 그러나 지금보다 허영심이 더 많았을 젊은 시절이었다면, 어느 쪽에 끌렸을지 잘 모르겠다.
이자벨 아자니의 연인이라는 (거짓된) 상징자본을 그녀와의 밤들이라는 ‘사랑의 실행’보다 더 높이 쳐줬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젊은 시절에도 나는 병보다 술을 더 사랑했다.
한 쪽은 감춤이고 다른 쪽은 드러냄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드러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 그릇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 드러냄 역시 감춤이다. 그러니까 허영심도 감춤의 욕망이다. 그것은 감추기 위해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이런저런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 꾸며낸 넉넉함을 드러내려는 마음.
■ 사랑에 빠지면 감추고도 싶고 뻐기고도 싶어
제가 지닌 좋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전형적 태도는 감춤과 드러냄 사이의 망설임이다. 누군가 그 좋은 것을 훔칠까 걱정스러워 저만 아는 곳에 감출 수도 있지만, 사람들 앞에 내놓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그 걱정에 앞설 수도 있다. 그렇게 감추고도 싶고 드러내고도 싶은 좋은 것, 그래서 더러 도둑맞기도 하는 좋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시동은 감춤과 좀더 바투 이어져있다. 사랑의 첫 단계가 힘든 것은 제 마음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가 대뜸 그 사람에게 제 마음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그는 짐짓 무심한 체하면서, 제 마음을 앗아간 사람 둘레를 빙빙 돌 뿐이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감추기만 해선 사랑을 얻을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 드러냄의 순간이 언제인지는, 때로, 사랑의 여로에서 결정적이다.
■ 허영놀이 닮은 사랑… 제 모자람 감추기 마련
사랑놀이에서의 감춤은, 더 나아가, 허영놀이에서의 감춤과 닮았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 역시 일종의 허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제 모자람을 감춘다. 못되거나 유약한 성격을 감추고, 가족들의 변변찮음을 감추고, 가난과 빈약한 교육배경을 감추고, 엉덩이의 흉터를 감춘다.
제대로 감추지 못한 모자람은 실제로 세속적 사랑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그것들을 넘어서고, 어떤 사랑은 그것에 걸려 넘어진다. 들추려는 노력과 감추려는 노력은 수사관과 피의자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감춤과 들춤은 사랑의 동역학이기도 하다. 그것이 꼭 속된 사랑에서만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일종의 수사(搜査)고, 숨바꼭질이다. 감춤이 끝내 여의치 않은 피의자가 꼬리를 감추듯, 감춤이 끝내 여의치 않는 연인도 꼬리를 감춘다. 이름에 값하는 사랑이란 감춤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겠으나, 현실의 사랑이 그렇게 씩씩한 것만은 아니다.
■ 섹스, 수줍고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 같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좁은 의미의 사랑 행위, 곧 성행위는 사적 공간,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것 역시 사랑이 감춤이라는 뜻이다. 사랑은 뭔가 수줍은 것, 부끄러운 것, 그래서 감춰야 할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들추는 것은 성폭력이고, 그것을 엿보는 것은 도착적 성행위다. 자본주의는 그 감춰진 사랑을 들추거나 엿보는 것(훔쳐보는 것)을 상품화했다. 섹스 산업의 큰 부분은 감춤을 무효화하려는 들춤의 욕망에, 엿봄과 훔침의 욕망에 기대고 있다.
좀 다른 감춤이기는 하나, 아이들의 옛 이야기 하나는 감춤이 사랑의 거멀못임을 드러낸다. 나무꾼과 선녀의 사랑은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감춤으로써 시작됐다. 그 옷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의 사랑은 (일단) 파탄했다.
■ 나무꾼이 선녀의 옷 감춤으로써 사랑 시작돼
감춤은 숨김인가? 일단은 그렇다.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의 관용어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숨긴다’에서, ‘감추다’와 ‘숨기다’는 자리를 맞바꿀 수 있다.
미래의 연인 앞에서 제 마음을 감출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감각으로는, ‘숨긴다’에는 왠지 일탈의 뉘앙스가 짙다.
모자람을 숨기는 사람보다 모자람을 감추는 사람에게 더 너그러울 수 있을 것 같다. 또 우리는 사람을 숨길 수는 있지만 감출 수는 없다. 예컨대 우리는 경찰에게 쫓기는 동무를 집에 숨겨줄 수는 있지만 그를 감춰줄 수는 없다.
감춤은 가림인가? 두 말은 서로 통한다. 여름 바닷가의 여자들은 흔히 제 가슴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가린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제 음부를 감추기 위해 그것을 가린다. 감춤과 가림은, 둘 다, 뭔가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서 가림은 감춤보다 더 구체적이다.
가린다는 것은 눈과 대상 사이에 뭔가를 놓는다는 뜻이니 말이다. 수줍음 많은 여성이 웃을 때, 그녀의 입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엔 그녀의 손이 끼여든다. 그녀는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여름 바닷가 피서객들의 엉큼한 시선과 여성의 가슴 사이에는 브래지어가 끼여든다. 그녀는 브래지어로 제 가슴을 가렸다.
영어 ‘브래지어’(brassiere)는 같은 철자의 프랑스어 ‘브라시에르’를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어에서 ‘브라시에르’는 ‘브래지어’의 뜻이 아니다. 그 말은 특별한 형태의 조끼나 부인복을 가리킨다. 중세에는 이 말이 갑옷의 팔받이를 가리켰다. 그도 그럴 것이, ‘브라시에르’는 ‘팔’을 뜻하는 ‘브라’(bras)에서 나온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가슴과 관련돼 쓰인 적이 없는 ‘브라시에르’가 해협과 대양을 건너가 가슴가리개를 뜻하게 된 것은 영어 화자들이 ‘돌려 말하기’를 실천했기 때문일 테다.
프랑스어 화자들은 브래지어를 ‘수티앵고르주’(soutien-gorge)라 부른다. 직역하면 ‘가슴받침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사람들에게 브래지어는 가슴을 가리는 물건이 아니라 가슴을 떠받쳐서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프랑스어에는 ‘브래지어 같은 거짓말쟁이’(menteur comme un soutien-gorge)라는 표현이 있다. 지독한 거짓말쟁이라는 뜻이다.
■ 감춤이란 숨기고 가리고 품거나 담는 것
감춘다는 것은 또 무언가를 자기만 아는 곳에 가두거나 품거나 담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도록 담을 두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 담 안쪽이 사랑의 공간이다.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의 공간은 비밀의 공간이다.
국어학자 이남덕 선생(함자에 사내 男자를 쓰시기는 하나 여성이시다. <역사 앞에서> 라는 일기로 유명한 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부인 되신다)은 필생의 역저 <한국어 어원 연구> 에서 감추다, 숨기다, 가리다, 품다, 가두다, 담다, 훔치다 같은 말들을 ‘수장(收藏) 음폐(陰蔽) 개념어’라 부르고, 이 말들의 어근형이 ‘검다’(黑)의 어근과 한 뿌리라 지적했다. 그렇다면, 감춘다는 것은 검은 곳에 둔다는 뜻이겠지. 사랑은 본디 어두운 것? 한국어> 역사>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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