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2일 외무장관 등 대규모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1박2일 일정으로 이라크를 전격 방문했다. 이란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후 30여년만에 처음이다.
이라크의 경제 재건을 위한 지원책 협의가 표면상으로 드러난 그의 방문 목적이다. 방문 형식도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이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이 짙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수차례 이란을 방문했고, 알 말리키 총리도 2006년 9월과 지난해 8월 두 차례 이란을 찾았다. 그의 답방을 계기로 80년 전쟁(8년전쟁)까지 치르며 중동에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지목됐던 두 나라의 관계가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의 역사적 관계, 미국과 극한 대치를 하고 있는 핵 프로그램 문제,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중동 수니파 국가들의 우려 증가 등 국제 정세를 감안할 때 이란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여러 관측을 낳고 있다. 특히 이란과 이라크의 유착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그의 전격적인 이라크 방문은 정치적 해석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수니파였던 사담 후세인 정권과는 달리 현 이라크 정권은 이란과 같은 종파인 시아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들은 후세인 정권 시절 대부분 이란에서 망명생활을 했거나 이란 출신들이다. 일부에서는 이라크 시아파 중 반미 무력투쟁을 주도하는 있는 강경파 무장세력들에게 이란 정부의 무기가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은 물론, 미국 정부 내에 이란이 이라크 지도층과의 특수관계를 이용해 시아파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파다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이라크 폭력사태를 부추길 뜻이 없다. 이라크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단단히 차단막을 쳤다. 자신의 방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한 발언이지만, 이란이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다른 키워드는 미국이다. 이번 방문은 핵 문제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의 지도자가 미국이 수행하는‘테러와의 전쟁’의 안방을 찾는 것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가 없으면 성사되기 불가능한 방문이라는 얘기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이란을 고립시킨다는 우리의 노력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고 평가절하한 뒤“우리 국민을 죽일 수 있는 정교한 무기를 반입하지 말 것을 (이란 대통령에게) 촉구해야 한다”는 당부를 알 말리키 총리에게 전했다. 미국은 이란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이 어떤 이해득실을 가져올지 단정하지 못하지만, 이란이 이라크 내정을 안정시키는 데 갖는 현실적 힘과 무게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라크 방문이 국내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서방에 맞서 핵 문제에 ‘올인’한 나머지 경제문제 등 화급한 국내 현안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 달 말 치러지는 총선은 그에 대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는다. 개혁파에게는 물론, 보수파로부터도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그가 국제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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