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발행ㆍ124쪽ㆍ7,000원
‘점심 무렵,/ 쇠줄을 끌고 나온 개가 곁눈질로 걸어간다./ 얼마나 단내 나게 뛰어왔는지/ 힘이 빠지고 풀이 죽은 개/ 더러운 꼬랑지로 똥짜바리를 가린 개/ 벌건 눈으로 도로 쪽을 곁눈질로 걸어간다./ 도로 쪽에는 골목길이 나오지 않는다./ 쇠줄은 사려지지 않는다./ 무심코 지나치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가듯 개가 걸어간다./ 늘어진 젖무덤 불어터진 젖꼭지/ 쇠줄을 끌고 걸어가는 어미 개/ 도로 쪽에 붙어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다./ 하염없이 꽃가루가 날린다.’(‘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이윤학(43ㆍ사진) 시인의 7번째 시집 속 화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다. 다가가지 않고, 닿지 않을 헛손질은 삼가고, 눈동자조차도 미동할 뿐이다. 그는 얼핏 무심해 뵌다. 하지만 시에 펼쳐진 풍경에 그의 내면이 비칠 때, ‘꼬랑지’ ‘똥짜배기’ ‘불어터진’ 등 개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된소리ㆍ거센소리 시어들이 문득 눈에 들어올 때, 독자는 ‘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 속 자괴와 안간힘을 눈치챈다.
하여 시집은 심상한 듯한 풍경으로 덧칠된, 시인의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을 발견하는 ‘숨은 그림찾기’다. ‘오전 내내 마룻바닥에 굴러/ 볕을 잘 쬔 1.5리터들이/ 우그러진/ 환타 페트병을 집어’ 들고 화분에 줄 물을 채우던 ‘나’는 ‘피식 웃고 떠난 네 이름. 네 얼굴./ 네 뒷모습 떠오르지 않는다.’ 심상히 물을 받아들이던 페트병은 제 속에 있던 파리가 날아간 뒤 ‘참았던 숨 울컥 토해놓는다.// 장미 화분에 찬물을 주는 동안/ 환타 페트병 전신이 울렁인다.’(‘환타 페트병’) 몸을 들썩이며 속울음 쏟아내는 ‘나’가 풍경 뒷편에 숨었다. 어쩐지 따라 울고 싶어지는 이런 이별가들이 시집에 여럿 있다.
<그림자를 마신다> 이후 2년반 만에 나온 시인의 시집엔 67편의 시가 실렸다. 박주택 시인은 “이번 시집은 이윤학의 90년대 시에서 보였던 고통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진 대신, 2000년대 들어 보이는 관찰자적 시선이 한층 강화돼 생의 허기짐과 결핍에 대한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고 해설했다. 그림자를>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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