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우스 글라우브레히트 지음ㆍ유영미 옮김들녘 발행ㆍ272쪽ㆍ1만2,000원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으로 창조론적 세계관이 붕괴된 이후 진화의 비밀에 대한 탐구는 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쉼 없이 자극해왔다. 종의>
한 세기 이상 창조론자들의 집요한 도전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요즘에는 ‘모든 생명체의 몸은 인간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극단적인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대중들이 열광할 정도로 진화론의 완승으로 결론지어졌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로, 탁월한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진화라는 프로세스가 어떻게 지구상의 생물종의 행동을 지배하는지를 추적한다. 대중들의 눈 높이에 맞도록 몸무게 5톤이 넘는 육중한 아프리카 코끼리에서부터 태평양 바닥에 서식하는 손바닥 만한 달팽이까지 전방위적인 사례를 끄집어냈다.
저자의 관심이 모이는 곳은 역시 종족보존과 직결되는 동물들의 ‘짝짓기’ 행동이다. 책은 진화론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행동들을 적절하게 짚어낸다.
15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실험한 ‘인간정자의 경쟁’에 관한 연구결과는 흥미롭다. 연구에 따르면 몇 달 동안 꾸준히 남성의 정액을 수집해 정자 숫자를 계산하고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과의 관계를 따져봤더니, 여성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남성의 정자수는 부인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남성의 그것보다 많았다.
여성이 ‘중간에 곁눈질 할 위험’이 높을수록 정자의 숫자는 늘어났는데 이는 후손증식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 발생하면 남성의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오랑우탄 수컷들이 종족보존을 위해 사용하는 전략도 놀랍다. 그것은 ‘눈속임’과 ‘강간’이라는 전략이다. 수컷 오랑우탄중 다수는 갑자기 성장을 멈추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신체적으로 미성숙해보이지만 호르몬면에서 이미 성장이 이뤄진 상태로, 지배자와 마찰을 빚지 않고 암컷에 접근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접근은 했지만 암컷은 자라다 만 수컷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짝짓기를 시도해 번식을 시도한다.
또한 코끼리가 내는 저주파의 울음소리도 짝짓기와 연관지으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높은 주파수의 소리는 사바나의 키 작은 덤불에 흡수되기 때문에 구애를 위해서 코끼리는 낮은 주파수의 울음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보노보원숭이들의 분방한 성생활은 무엇을 위한 생존전략인지, 캥거루들은 왜 우스꽝스러운 뜀뛰기를 고집하는지, 번식능력을 상실하면 오래지 않아 숨지는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여성은 폐경 후에도 왜 그렇게 오랫동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등 시시콜콜한 궁금증을 책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이해준다.
책을 덮고 나면 “제 아무리 똑똑한 체 해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어머니로 둔 어린아이일 뿐이다”라는 지은이의 말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