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깜찍하게 율동을 하는 평양 발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뉴욕 필 하모닉의 역사적 평양 공연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단원들이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 들렀을 때 북한 어린이들이 징글벨을 부르며 연출한 장면이다. 때 아닌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니 좀 어색한 느낌도 든다.
더구나 종교, 특히 지독한 기독교 탄압 국가로 널리 알려진 북한이 아닌가. 물론 북한에서 산타 복장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내보내는 기사나 사진에는 종종 산타 복장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 연말에 부모들이 산타 모자를 쓴 자녀를 동반하고 김일성 동상을 찾거나, 설날을 맞아 산타 복장을 한 남학생들이 연 날리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우리 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이를 보면 북한에서 산타 복장은 크리스마스와는 특별히 상관이 없는, 겨울철의 한 패션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당국이 뉴욕 필 단원들에게 산타 복장을 한 어린이들의 징글벨을 선사한 것은 다분히 계산된 연출로 보인다. 크리스마스 캐럴인 징글벨은 어린이들이 뉴욕 필 단원들에게 들려줬던 클레멘타인과 함께 본디 미국 민요이기도 하다.
▦ 미국 손님들에 대한 호의의 표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어두운 이미지를 바꿔 보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TV화면 등을 통해 캐럴과 미국 민요를 부르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미국인들도 느끼는 게 많았을 것이다. 역으로 뉴욕 필 공연이 북한 사회 내부에 안긴 충격도 컸다.
한 평양 시민은 "미치광이로 생각해 왔던 미국 사람들이 우리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쩌면 북한은 주민들에게 '철천지 원쑤'로 주입된 미국에 대한 인식 전환을 꾀했는지도 모른다.
▦ 처음엔 북한 당국은 공연실황을 북한 전역과 세계에 생중계해야 한다는 뉴욕 필의 조건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런 태도는 곧 달라졌다. 생중계를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연 당일 주민들이 실황중계를 보는 데 지장이 없게 학교와 직장에서 1시간씩 일찍 귀가토록 지시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뉴욕 필 평양 공연의 파장을 감안할 때 단순히 '김정일 장군님'의 공로라고 선전하려는 속셈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무언가 큰 변화를 모색 중일 것이라는 분석이 희망 섞인 기대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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