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일. 그렇다. '천신정'으로 불렸던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내의 소위 개혁파의원들이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참여 통합신당을 만든 것이 2003년 9월 20일이다.
이 당이 열린우리당이 됐고 이후 지난 대선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변신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3일 이 당과 민주당이 합쳐 통합민주당이 탄생했다. 정확히 1,607일 만에 원 위치를 한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였던 손학규 전 지사가 당내 대선후보경쟁에서 가망이 없자 탈당을 해 합류함으로써 당의 대표로 자리 잡았다는 것 정도이다.
■ 민주당에서 통합민주당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과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이루어진 두 당의 합당, 이에 따른 '1,607일 만의 원위치' 내지 '1,607일 만의 귀환'을 바라보면서 국민참여 통합신당의 실험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처럼 원위치하고 말 것을 대통령 탄핵이다, 핏발 선 상호 비방이다, 그동안 그 난리를 부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미스터리인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신정 등이 민주당을 탈당해 신당을 만든 이유이다. 이념적으로 이들과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이 모두 한나라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도, 그렇다고 민주노동당같은 진보세력도 아닌,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다. 따라서 분당을 해야 할 만큼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별로 없었다.
여론도 분당에 매우 불리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신당 창당에 찬성한다는 사람은 35%에 불과하고 61%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특히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의 여론은 더욱 나빴다.
사실 노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자살골이 아니었다면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참패를 하고 신당 실험은 이미 4년 전에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신당주도세력이 분당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당시 분당파가 내건 국민참여 통합신당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국민이 참여하는 진정한 대중정당 건설이다. 물론 민주당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당에 가까운 낡은 정당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국민경선 참여경선제를 도입해 이미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이 면에 썼던 '개혁신당의 빛과 그림자(2003년 5월 19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민주당은 이미 국민참여 경선제를 명문화하고 있었고 국민참여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분당을 해 신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민주당을 국민참여 정당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신당파는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분당을 택했다. 아니 2003년 4월 재ㆍ보궐선거에서 개혁당의 유시민 후보를 민주당 후보로 만들어 주기 위해 지구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향식으로 밀실 공천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면서 국민참여정당을 만든다며 분당을 했으니 기이한 일이다.
■ 지역주의만 살린 역사의 낭비
남는 것은 지역주의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 한국의 보수정당들은 2003년 당시 기본적으로 지역당들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2003년의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을 탈당해 새 통합신당의 표어를 내건다고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지역정당이 탈지역정당으로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한국정치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탈지역주의를 내걸고 분당을 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신당이 지역주의를 넘어섰는가?
이 점에서 1607일간의 실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역사의 낭비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이 같은 낭비를 반복해선 안 된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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