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고모(32)씨의 아침 출근을 지켜보는 건 가족이 아니라 아파트 복도의 폐쇄회로(CC) TV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회사에 들어설 때도 마찬가지다. 고씨는 “내 속살까지 노출 되는 느낌”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CCTV가 넘쳐 나지만, 설치ㆍ관리 기준 등 기본 법규정 조차 없어 개인 사생활 침해를 넘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회사나 개인이 맘대로 설치하고 있는 CCTV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관련 법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대한민국은 CCTV 천국
본지 취재진이 2일 대형 빌딩과 주택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를 점검한 결과, 반경 100m 이내의 CCTV가 300여 대에 달했다. 경찰은 전국에 설치된 CCTV를 200만대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특히, 기업이나 개인이 설치하는 CCTV가 우후죽순 늘고 있다.
사설 경비업체 K사 관계자는 “경찰과 구청에 신고할 필요도 없다”며 “우리나라 CCTV 종류는 자동차 종류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매월 수 십대가 팔리는데, 가격은 3일분 녹화 내용만 보관되는 것은 200만원 이상, 15일짜리는 350만원”이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고화질로 실시간 감시가 가능한 네트워크 카메라가 놀이방, 유치원, 학원 등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급증 추세인 만큼 악용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나 행정 기관이 설치 규모와 위치 등을 전혀 모른다”며 “개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고스란히 찍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며 악용되는 등 명예 훼손과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민간규제 마련돼야
사후 관리도 엉망이다. 현재 CCTV 설치와 관리는 기초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범죄예방, 쓰레기 불법투기 단속용으로 설치한 것과 개인이나 기업이 설치한 것으로 나뉜다.
공공부문은 그나마 지난해 11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이 개정돼 CCTV영상을 개인 정보로 인정, 범죄예방 등 공익을 위해 설치할 때도 주민 동의를 받은 뒤 촬영시간 등을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부분 안내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 인력도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민간 부문은 법적 근거도 없다. 지난해 11월 ‘CCTV 개인영상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호텔과 대형 음식점 위주로 권고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이 설치한 것은 아예 권고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지난달 소실된 숭례문의 CCTV도 설치와 사후 관리 책임을 모두 민간업체가 맡는 바람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대전대 이상훈(44) 교수는 “민간이 달았어도 정부가 CCTV 설치 매뉴얼과 관리지침을 만들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백화점 같은 다중 이용시설의 CCTV 설치에 대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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