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가 미국에 돈을 빌려준다고? 만우절에나 나올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주인공은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68)다. 보석세공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경제학박사를 받고 방글라데시로 돌아와 치타공 대학에 재직하던 중, 1976년 그 유명한 그라민은행을 만들었다.
20달러가 없어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계기였다. 빈민의 자활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의 시초인 이 은행은 지금 한국 등 37개국의 700만 명에게 65억 달러를 꿔줄 만큼 성장했다.
▦ 그라민은행이 올들어 뉴욕에 진출, 퀸스지역의 이민 여성들에게 5만 달러를 빌려줬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으로 부쩍 높아진 금융회사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의 구세주가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은행계좌가 없는 신용취약 계층은 2,800만 명에 달하며 4,400만 명은 금융기관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 은행 총재인 유누스는 "서브프라임 위기는 기존 금융시스템의 약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향후 5년간 뉴욕의 빈민들에게 1억7,000만 달러를 대출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는 계속된다. 최근 서구 잡지에는 수십 대의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미국에 돈다발을 뿌리는 만화가 종종 등장한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아시아의 국부(國富)펀드가 서브프라임 부실로 돈줄이 마른 씨티와 메릴린치 등 월가의 금융회사 지분이나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을 빗댄 것이다.
총 2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이들 국부펀드는 미국에 600억 달러, 유럽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오히려 "국부펀드의 정체를 밝히라"고 떠드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 갤럽이 2월 초 1,000여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을 묻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0%가 중국을 꼽았다. 미국은 33%였고 일본은 13%, EU는 7%에 그쳤다. 2000년 조사에서 65%가 미국을, 10%만 중국을 선택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20년 뒤 경제 선도국가로는 중국이 44%, 미국이 31%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어제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유로 당 1.5달러로 추락했다. 1999년 유로 등장 이후 처음이다.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추가 금리인하 전망 때문이란다. '제국의 치욕'은 끝이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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