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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민이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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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민이 뿔났다

입력
2008.02.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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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의 인기가 대단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 김한자 여사와 비슷한 연령대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5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그 이상 70대 80대에 이르기까지, '뿔난 엄마'의 심정을 잘 아는 여성들은 주말 저녁 이 드라마를 놓칠까 봐 조바심을 친다.

남편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 은퇴하여 TV를 많이 보게 된 이 연령대의 남성들도 김수현 드라마의 재미에 푹 빠졌다. 평소에 드라마를 즐길 여유가 없었던 남편들은 이 드라마에 이끌려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구구절절 공감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 그와 동시대를 살아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드라마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다고 한다. "여보 빨리 와. 드라마 시작했어. '엄마가 화났다' 시작했다구" 라고 소리질렀다는 남편, 저녁 약속을 하면서 "주말은 곤란해요. '아줌마가 뿔났다' 를 봐야 하니까" 라고 말했다는 남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가 방영될 때 '불효자는 웁니다' 라고 엉뚱하게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리는 축복 중에서 좋은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다. 머리가 뛰어나고, 능력이 있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문화예술인 과학자 교육자 기업인 등 각 부문에 이런 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과 동시대를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강부자'(강남의 땅부자)보다 더 큰 부자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빛나는 것은 작가의 역량만이 아니다. 출연배우들의 농익은 연기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순재 김혜자 강부자 백일섭 씨등의 연기를 보면서 달인(達人)의 경지란 저런 것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배우와 극중인물이 너무 닮아서 김한자 역을 맡은 김혜자씨는 김혜자인지 김한자인지 헷갈릴 정도다.

나일석(백일섭) 나이석(강부자) 쌍둥이는 진짜 쌍둥이가 울고 갈 정도로 쌍둥이같다. 그들의 아버지인 나충복(이순재) 할아버지 역시 나충복 씨인지 이순재 씨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서로 닮았다.

"나는 내 인생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한탄하는 며느리와 소주 잔을 주고 받는 나충복 할아버지, "한평생 박봉으로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고 그 고생을 했는데 당신이 왜 '꼬랑지'를 내려. 미안해. 내가 사과할께"라고 풀 죽은 남편을 다독이는 아내 김한자, "우리 아버지 공부만 더 했으면 뭔들 못하셨을까" 라고 아부하는 딸 나이석, 깜박깜박 건망증이 심한 아내에게 "빤쓰는 입은 겨?" 하고 놀리는 남편 나일석…순진하고 능청맞고 엉뚱하고 주책스럽고 넘치고 좀 모자라는 인물들이 따뜻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 정치에는 왜 달인이 없나

지난 며칠 동안 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청문회를 보면서 너무나 유감스러웠던 것은 왜 정치에는 달인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의혹이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보다 대응하는 태도가 더 기가 막힌 내정자들을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 슬펐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의 도덕 불감증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불법행위냐, 투기냐, 표절이냐 등의 논란 자체보다 의혹에 대응하는 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국민이 더 놀라고 있다. 최소한의 자기검열도 없이 공직을 맡겠다고 나선 만용에 놀라고 있다.

"저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산 것이 악몽 같다"고 생각되는 정치인은 많은데, "그가 있어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정치인은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치에는 왜 김수현이 없고 김혜자가 없을까. 국민이 뿔났다.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국민이 왜 뿔이 났는지 잘 공부하고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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