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알래스카 해변의 작은 마을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 정유회사와 전력업체 등을 상대로 무더기 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주정부가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특정 회사들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었으나 피해 주민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래스카 북부 해안의 키발리나 마을은 26일 “BP아메리카와 셰브론 등 5개 정유사와 14개의 전력업체, 석탄업체가 수백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유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한 책임이 있다”며 이들 업체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 마을은 또 5개 정유사와 함께 엑손모빌, 코코노필립스,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 등 3개 업체를 상대로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대중을 호도하는 선전을 오래도록 했다”는 이유로 이들 업체를 공모혐의로 추가 제소했다.
키발리나는 추키해와 2개의 강 사이에 있는 주민 400명의 작은 마을로, 더 추웠던 시절에는 바다의 얼음이 파도를 막아줘 마을이 범람할 위험이 없었다. 전형적인 에스키모 마을로 주민들은 얼음 땅에서 고래와 연어, 순록 등을 잡으며 생활해 왔으나, 언 땅이 녹아 바닷물이 새어 들어 오면서 마을 전체가 침수 위기에 처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침수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키발리나 주민들은 “주택과 건물이 바다로 빠지는 긴급한 위험에 처했다”며 마을을 이전하는데 4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소장에서 밝혔다.
문제는 범 세계적 현상인 기후변화가 원인이 된 피해에 대해 특정 업체에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한가 여부이다. 전문가들은 키발리나 마을이 승소하기 위해서는 피고측이 자신의 직접적인 피해와 관련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소송은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키발리나 마을측 변호사인 매트 파와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산과 복지의 손해는 전형적 다중 피해사례”라며 “금전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다른 소송과 차별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애리조나대학 커스틴 엥겔 법학교수는 “이들 업체의 행동이 비상식적이고 다중의 피해를 유발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2003년 그린피스 등 환경 단체들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속으로 잠길 위험에 처하자 미국과 호주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6개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동부지역 몇몇 주들은 공동으로 유틸리티 업체들을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법원은 정치적인 면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법원이 다룰 성질이 아니라며 소송을 기각한 적이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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