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9일 수필가ㆍ미술평론가였던 김향안(金鄕岸)이 뉴욕에서 88세로 사망했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卞東琳)이다. 소설가 이상(李箱ㆍ1910~1937)의 임종을 지켰을 때 그는 변동림이었고, 죽어서 화가 김환기(金煥基ㆍ1913~1974)의 묘소 옆에 같이 묻혔을 때는 김향안이었다. 이상과 3개월, 김환기와 30년을 살았던 ‘두 천재의 아내’ 김향안은 우리 문화사의 뮤즈였다.
변동림은 이상의 절친한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의 계모의 이복동생이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닌 문학소녀 변동림은 이상을 만나 1936년 6월 결혼했다. 그 해 ‘날개’ ‘봉별기’ 등을 썼던 이상은 석 달만인 10월 일본으로 떠났다가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됐고, 이듬해 4월 사망했다. 변동림은 도쿄로 가 이상의 장례식을 치르고 유해를 안고 돌아왔다.
이상이 죽은 후 김향안이란 필명으로 수필을 발표하며 활동하던 변동림은 1944년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김환기를 소개받아 결혼한다. 김환기와 파리, 뉴욕 시절을 함께 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는데 애쓴 김향안은 김환기 사후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1992년에는 국내 최초의 개인 기념 사설 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을 만들었다.
김향안은 1986년 ‘문학사상’에 첫 남편 이상에 대해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 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천재는 또 미완성이다”라고 썼다. 두번째 남편 김환기에 대해서는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가진 예술가의 동반자로 살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레몬 향기를 맡고 싶소> 는 최근 출간된 이상의 산문집이다. 이상의 생생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산문을 읽는 느낌은 각별하다. 변동림에 대한 언급도 여러 차례 나온다. “레몬 향기를 맡고 싶소”라는 책 제목은 이상의 유언으로 잘 알려진 말이다. 그런데 김향안은 나중에 그것은 와전된 것이라며 실제로는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말이 이상의 유언이었다고 한 바 있다. 레몬>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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