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돈다발에서 나온다.'
삼성 특별검사팀이 28일 삼성의 후계자 이재용씨를 소환한 것을 보면서 생각해 본 문구다. 한때 학계에서 연구가 활발했던 '국가론'도 떠올려봤다. 국가의 본질, 기원, 조직, 형태 등에 관한 이론으로 재벌과 국가 권력간의 관계를 분석할만한 틀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론은 몇 갈래가 있다. 국가는 다양한 집단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심판이라는 보수이론(다원주의 국가론)과, 국가는 지배계급의 공동이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급진이론(도구주의 국가론)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나름 '상대적 자율성'도 있다는 변형된 급진이론인 '구조주의 국가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삼성비자금 의혹을 터트린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은 비자금을 조성해 국가의 요직, 권력의 핵심부에 금품을 살포했다. 삼성은 금력으로 국가 권력을 구워 삶았고, 그 대가로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려 했다는 것이 요지다.
'구조주의 국가론'의 분석틀로 보면 삼성이 돈다발을 통해 국가가 지배계급(삼성)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시도했고, 특검은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한시적인 국가 기구로서 삼성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입장에 있다. 특검은 지금 돈다발을 어떻게 만들어, 누구에게 살포했고 무슨 이득을 얻었느냐를 조사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국가가 다양한 집단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한다는 '다원주의 국가론'보다는 국가가 지배계급 이익을 대변한다는 '도구주의 국가론'이나 '구조주의 국가론'이 더 잘 들어맞는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은 특히 그랬다.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던 그 시절 국가는 군벌이 중심인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다.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절을 거치면서 재벌이 군벌을 서서히 대체한 것이 달라진 점이다.
금력으로 국가 권력을 넘보는 재벌의 행태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최대 재벌의 총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탈세를 위해 세무공무원 매수 등의 불법을 저질러 법원을 들락거렸다. 베를루스코니는 후에 총리가 되어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집중시켰다. 재벌이 권력까지 접수한 경우다.
재벌이 권력을 창출한 사례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와 마찬가지로 텍사스의 막강한 석유재벌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있다.
이라크 전쟁도 따지고 보면 석유쟁탈전이다. 덕분에 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 재벌들이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것도 부시의 집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재벌이 권력 창출에 기여한 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이 봉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재용씨에 이르기까지 삼성 핵심인물을 줄줄이 소환한 것만 보면 특검의 의지가 대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벌써 "모양새는 화려하지만 결과는 별 것이 없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되지않는 특검 인원으로 170여명으로 추정되는 삼성 법무팀과 대항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비아냥도 있다. 갑작스레 이재용씨를 소환한 것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재촉 때문이라는 점도 그렇다. 수사결과가 나오면 우리는 어떤 국가에 해당되는지 확인할 수 있겠다.
조재우 피플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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