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자 3명 낙마 사태를 겪은 여권에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당청간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엄중했던 만큼 해법을 두고 당청간 이견이 불거질 개연성도 적지 않았으나, 양측은 무난히 피해갔다.
만약 갈등까지 표면화했다면 가뜩이나 뒤숭숭한 민심은 훨씬 나빠졌을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이 문제 장관 후보자들의 교체를 적극 요청하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로 상황을 풀어간 것은, 당청분리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당청간 대화채널이 막혔던 지난 5년간 참여정부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이다. 당이 공개적으로 청와대를 압박하는 형태가 아닌, 조용한 물밑 대화를 통해 이뤄낸 것도 전과 다른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마지못해 밀린 것 같은 체면손상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당은 민심을, 대통령은 당의 의견을 각각 존중하는 모양으로 서로 윈윈 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의 27일 긴급 조찬회동은 26일 밤 사전 조율의 결과다. 강 대표는 청와대측에 “당에 난리가 났다”며 당내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며 자신의 비서실장이던 박재완 정무수석 내정자를 통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27일 새벽까지 대책회의를 가졌고, 이 대통령은 아침 일찍 강 대표 등과 마주 앉았다.
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문제 장관 후보자들의 입장을 감안, 교체 폭을 가급적 줄이고 싶어했던 이 대통령을 “2,3명은 한번에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이 또 끌려갈 것”이라고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강 대표 본인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심의 소리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계속 (청와대에) 전달했고, 이 대통령이 당의 의견을 폭 넓게 열린 마음으로 듣고 동감을 해줬다”며 “당은 민심을 잘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청이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매우 긍정적 신호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이번을 계기로 기존 당정협의를 확대한 ‘당정청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경제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민생 살리기 대책이고,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당정청 협의체를 열어 협의를 벌여 나가기로 했다”며 “당정청 협의체는 주로 정책 협의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대통령과 대표 회동도 정례화해 주로 정무적 협의를 해 나갈 방침이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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