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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파장동 하숙촌/ "나이든 하숙생들만 찾아오죠"

입력
2008.02.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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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백발이 성성한 하숙생들만 받아요.”

28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파장동 주택가. 1번 국도 서울 방향 지지대 고개 오른쪽에 있는 행정자치부 지방혁신인력개발원과 국세청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온 40, 50대 공무원들 400여명이 줄줄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수원 하숙마을. 하숙집 40여 개가 몰려있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진동한다.

하숙마을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1957년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처음 들어선 후 78년 지방혁신인력개발원, 79년 교육인적자원연수원이 세워지면서 공무원 상대 하숙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변에 변변한 숙박시설이나 식당이 없어 고민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하숙을 시작한 주민들은 지금은 정보화센터까지 갖춰 놓고 전국 공무원들을 상대로 판촉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하숙마을을 거쳐가는 공무원은 연간 5,000여명으로, 이들이 뿌리고 가는 돈만 5억여원에 달한다.

경북하숙 정태옥(50)씨는 “하숙생들이 전화나 편지, 이메일로 ‘덕분에 교육 잘 받고 돌아왔다. 너무 고맙다’고 소식을 전해오면 보람을 느낀다”며 “식사준비, 청소가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고마움을 느끼는 이들 때문에 또 하숙생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숙마을의 강점은 무엇보다 집처럼 느껴지는 정겨움과 음식 맛이다. 하숙집들은 대부분 새벽시장에서 장을 봐 매일 새 메뉴를 상에 올린다. 된장 청국장 고추장 간장 등은 직접 담근 것을 쓰고 인공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1주일에 14만원인 저렴한 하숙비도 강점이다. 수원하숙 안용구(66)씨는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공무원 하숙생이 ‘아직도 14만원이냐’며 놀라워 했다”며 “80년대 초만 해도 공무원들을 붙잡고 손님 유치에 열을 올렸는데, 이제는 소문을 듣고 공무원들이 알아서 예약하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하숙마을은 행정ㆍ세무ㆍ교육 공무원들이라면 거의 한 번 이상씩 거쳐간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대부분 승진 후 교육을 받으러 오기 때문에 감회도 남다르다. 1년 교육 과정에 입교한 대구시 남중락 과장은 “사무관 교육을 받고 난 뒤 이번이 두 번째 하숙”이라며 “분위기가 편하고 음식이 집에서 먹는 것처럼 입맛에 맞아 지자체 공무원들은 교육 받으러 올 때 이곳에서 하숙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숙마을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2005년 교육인적자원연수원이 서울로 이전해 타격을 받은 데 이어 2012년 지방혁신인력개발원과 국세공무원교육원이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숙집들이 샤워시설 등 리모델링을 하기로 의견을 모아놓고도 추진을 못하고 있다. 지난 2년간 4집이 문을 닫기도 했다.

하숙마을 최해경(53) 위원장은 “카드결제가 안 되고, 시설도 노후해져 젊은 공무원들은 모텔 등으로 발길을 돌린다”며 “개발원과 교육원 이전으로 타격이 예상되지만 마지막 하숙생이 찾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하숙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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