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적자는 10년 전 우리나라를 환란으로 몰아 넣은 주범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반도체 가격 폭락, 환율 불안에 따른 고용조건 악화, 그리고 과잉 설비투자의 후유증으로 만성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적자폭은 40억달러(1994년) →87억달러(95년)→261억달러(96년) 등 급속도로 확대됐다. 환란 직전인 97년 10월까지 무려 34개월이나 지속된 적자 수렁은 길고, 또 깊었다.
경상수지 적자 확대는 해외 빚의 증가로 이어졌다. 97년 9월말 당시 대외 채무는 1,774억달러. 특히 이 중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외채가 절반에 육박하는 805억달러였다. 불과 3년여간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이 자금들이 일시에 빠져 나가면서 실탄(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난 것이다.
지금 상황은 당시와 꽤 닮아 있다. 지난달 경상수지 적자는 26억달러로 97년 1월(31억달러) 이후 가장 컸다. 자본 유입도 대폭 둔화됐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이 앞 다퉈 달러를 빼내간 탓이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를 합한 국제수지 적자(지난달 기준)는 23억달러로 외환 위기 당시와 맞먹었다. 단기 외채 역시 지난해 9월말 현재 1,459억달러로 2005년말(659억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물론 질 적인 면을 보면 기우(杞憂)일 수 있다. 10년 새 우리 경제의 ‘몸집’이 대폭 커졌고, 방어할 실탄도 2,619억달러(1월말 기준)로 충분하다. 외환 위기가 내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지금은 외부 요인이 더 커 보인다.
그렇다고 안일한 대응은 큰 위기를 낳을 수도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규모 대비 경상수지 적자 폭은 환란 당시에 비해 훨씬 낮고, 유가 급등 등 외생 변수에 따는 것이어서 환란 당시와는 다른 점이 많다”며 “하지만 추세가 악화하고 있는 만큼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