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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드 맨과 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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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드 맨과 루피

입력
2008.02.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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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상을 휩쓴 코엔 형제의 스릴러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는 낡은 표현을 빌리면 '운명의 장난'에 휘둘리는 인간과 세상을 그렸다고 한다.

제목은 텍사스 외진 곳의 늙은 보안관이 냉혹한 킬러를 추적하면서 줄곧 무력함을 보이는 줄거리를 상징한다. 보안관 역을 맡은 토미 리 존스의 선 굵으면서도 지친 듯한 면모가 황량한 텍사스 평원과 어울렸다는 평가다. 시대를 좇아가지 못하는 노년의 모습에 미국 사회의 현실이 비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영화 평에 며칠 전 인터넷에서 미국과 유럽 주택업계 전문가들이 시장 트렌드 변화를 논의하는 세미나를 가졌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눈에 띈 것은 '루피'(Rupis)라는 신조어다.

'은퇴 도시민'을 뜻하는 'Retired Urban People'을 줄인 말이다. 새 소비계층을 상징한 '여피'(Yuppies), '젊은 도시 전문직'(Young Urban Professionals)을 루피가 대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득과 수명이 늘수록 노년층의 구매력이 커지는 것은 상식이지만,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짜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은퇴 도시민 계층은 편하고 쾌적한 주거를 선호하는 수준을 지나, 활동적 생활 패턴에 맞는 주거 형태를 찾는다. 이에 따라 과거와 달리 대도시 노년층의 신규 주택 수요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업계는 도시에 노년 주택단지를 지으면서, 사교클럽 헬스장 영화관 식당 평생교육원 등을 함께 갖추고 있다. 문제는 쾌적한 자연 환경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대도시 대학과 제휴, 캠퍼스와 연결된 루피 전용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방식 등으로 새로운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이 흥미롭다. 55세 이상 은퇴 소비자 계층에 '노인'(Old men)과 같은 표현은 금기다. 이들을 위한 주거도 노인 또는 노년 주택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시니어 하우스' 따위도 시대에 뒤진다. 이들은 대신 루피와 함께 'Active Adult Living', 굳이 풀면 '활동적 성인 생활'과 같은 개념과 용어를 권했다.

어색하게 들리지만, 노년층의 의식과 삶과 소비 트렌드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한탄과, "노인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충고가 엇갈리는 양극화가 어디나 시대의 트렌드인 듯하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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