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재임 당시 여비서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몰렸던 클린턴이지만 미국을 높은 실업률과 장기 침체의 늪에서 구해낸 공과를 인정 받고 있다. 클린턴이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 받는 가장 큰 원천은 8년 재임 기간동안 보여준 ‘설득의 리더십’에 있다. 그는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맞을 때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의원들과 일일이 접촉을 갖고 타협을 이끌어 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최근 프로야구판이 시끄럽다. 센테니얼의 무차별적인 연봉 삭감과 KBO 이사회가 취한 일련의 조치 때문이다. KBO 이사회는 지난 19일 센테니얼의 8구단 창단을 승인하며 프로야구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연봉감액제한 규정을 철폐했다. 또 그동안 군보류 선수에게 지급해오던 수당도 당장 이달부터 없애기로 했다.
센테니얼은 KBO 이사회의 결정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액 연봉 선수들에게 최대 80%의 삭감안을 내밀었고, 해당 선수들은 크게 반발했다. 급기야 프로야구 선수협회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강경 방침을 밝혔다.
구단들은 “현대 사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선수들도 이제는 구조조정에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프로야구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 불필요한 ‘거품’은 걷어 내야 한다.
그러나 KBO와 구단들이 이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선수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했다. 선수들의 반발이 예상됐다면 사전에 여론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는 게 순리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 하더라도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
흑자 경영을 내세워 선수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센테니얼도 마찬가지다. 구단 방침에 반발하는 선수들을 “계산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경솔함 보다는 한번이라도 그들을 더 만나 설득하는 게 현명하다.
KBO와 구단, 선수들이 끝내 극한대립을 보인다면 결국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야 한다. 그러나 올해로 27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야구가 내부 문제를 남의 손에 맡겨 해결할 만큼 아직 성숙하지 못했단 말인가. 소통과 대화가 실종된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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