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 예문관최인호, 하길종의 만남1970년대 젊음의 초상
1979년 2월 28일 영화감독 하길종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1970년대 한국 영화사는 온전히 그의 이름과 함께 한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시절 시인 김지하, 소설가 김승옥 등과 어울리며 ‘문리대 거지그룹’으로 통했던 4ㆍ19 세대인 하길종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동문수학한 UCLA 영화과에서 한국인 최초로 학위를 받고 귀국한 것은 1970년이다. 실험정신 가득한 작품 ‘화분’(1972)으로 데뷔한 그는 ‘바보들의 행진’(1975)으로 한국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여자를 찾습니다’(1976) ‘한네의 승천’(1977) ‘속 별들의 고향’(1978)을 연출했던 그의 마지막 작품은 ‘바보들의 행진’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1979)가 되고 말았다.
‘바보들의 행진’은 소설가 최인호(63)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동명 장편(掌篇)소설이 원작이다. 철학과생 병태와 불문과생 영자를 주인공으로 1970년대초 한국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좌절을 그린, 최인호 특유의 재기 넘치는 소설이다. 하길종은 최인호의 경쾌한 문장을 살리면서, 검열 아래서나마 신랄하게 당시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장발 단속 경관들과의 쫓고 쫓기는 경주, 청바지와 통기타와 생맥주 문화,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나타난 영자가 차창에 매달려 병태와 입맞춤하는 장면. 억압적 현실에서 스스로를 바보로 치부하며 방황하고 고뇌하던 젊음이 생생하다.
병태가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날 때 들려오던 ‘왜 불러’, 최인호가 가사를 쓴 “우리들 가슴 속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로 울려퍼지던 ‘고래사냥’ 등 영화에 삽입됐던 노래들은 이후 오랫동안 금지곡이 됐지만 그 시대를 넘어 우리 가요의 대표적 절창들이 됐다.
오래 전 갖고 있던 소설 <바보들의 행진> 은 찾을 수 없었고, 책도 절판돼 있다. 최인호의 얼굴을 표지에 쓴 위의 책 사진은 인터넷을 뒤져 찾은 것이다. 바보들의>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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