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을 밟은 당예서(27ㆍ대한항공)가 힘들다.
제49회 세계탁구단체선수권이 열리고 있는 중국 광저우 체육관. 26일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아쉽게 진 여자탁구의 ‘에이스’ 당예서는 중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뒤로 한 채 묵묵히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지난 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뒤 출전한 첫 국제대회이기 때문에 중국 언론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당예서는 “중국 언론과는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취재를 거절했다.
모처럼 고향에서 물오른 탁구 실력을 뽐내고 있지만 이번 대회에 임하는 당예서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다. 이유는 중국 언론과 팬들의 따가운 눈총 탓이다.
당예서는 한국으로 귀화해 대표팀으로 선발된 뒤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조국은 중국이 아니라 이제 한국이다” “반드시 중국을 꺾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중국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당예서는 졸지에 조국을 배신한 선수로 낙인이 찍혔다.
당예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속이 상했다는 전언이다. 본래 중국을 깎아 내릴 의도는 없었는데 인터뷰 내용이 지나치게 ‘타도 중국’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곤란한 처지가 됐다.
이런 가운데 고향 땅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대한항공 강희찬 감독은 “당예서가 이번 대회에서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됐다. 지난 번 중국 언론의 보도를 접한 뒤 마음에 크게 상처를 입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예서는 2001년 한국에 건너온 이후 7년 만에 중국 탁구의 안방에서 실력을 뽐낼 기회를 잡았지만 중국 언론과 팬들의 ‘괘씸죄’에 걸려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70여개국 가운데 중국 출신의 귀화 선수는 무려 50여명. 하지만 유독 당예서만 조국을 등진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중국의 스포츠신문인 ‘상하이 오리엔탈 스포츠’의 주예 기자는 “당예서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감정이 좋지 않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계속 거절 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자 대표팀의 윤길중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 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미리 해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당예서가 어려움을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한다”며 믿음을 표시했다.
광저우(중국)=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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