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초라는 시간은 임계상태의 긴장감으로 기억된다. 전두환 정권 말의 공기는 무거웠고, 그 속에서 숨쉬는 사람들의 인내력은 바닥을 보였다. 같은 시간, 루마니아의 상황도 비슷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체제는 달랐지만, 독재 끄트머리의 숨막히는 시간이 함께 흘렀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그 시간의 절편을 예리하게 도려내 눈앞에 펼쳐 보인다.
영화는 한 대학 기숙사 방에서 시작한다. 고정된 카메라, 커트가 거의 없는 긴 테이크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건조하게 비춘다. 한 여자가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룸메이트인 여자는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그리고 호텔방을 예약한다. 30분이 흘러 갈 때까지, 관객은 이 행동의 목적을 알 수 없다. 어떠한 복선이나 내레이션도 없는 리얼리즘의 시각이 이 영화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낙태해 본 적 있느냐”는 남자의 질문이 있고서야, 이들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이 여인들은 차우체스쿠 치하에서 금지됐던 낙태 시술을 받는 중이다. 낙태수술의 과정과 시덥잖은 일상의 조각들이 무심히 겹치고, 짧지 않은 상영시간이 맨살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더디게 흐른다. 영화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어떤 인위적 설정도 그 시간 속에 없다.
쥐어짜도 물 한 방을 나오지 않을 리얼리즘은 차우체스쿠의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고스란히 데려간다. 그 지독한 감독의 의도 속에 갇혀 있으면, 속에서 울렁이는 뭔가를 느끼게 된다. 수식과 작위가 제거된 원석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축된 에너지 때문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28일 개봉. 18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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