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1989~96년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남태평양에서> 라는 서간문이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묘사가 탁월한 이 글은 김재철(73) 동원그룹 회장이 원양어선을 탈 당시 동생에게 보낸 편지였다. 글 솜씨가 이처럼 뛰어났기 때문일까. 남태평양에서>
조선대는 26일 국내 굴지의 대기업 대표인 김 회장에게 경영학 박사가 아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학 측은 “김 회장이 국가와 사회발전에 공헌했고, 문필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학술문화 창달과 대학문화 교육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해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문필 경력을 보면 조선대 측의 배경 설명이 공치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은 1975년부터 2001년까지 36년간 국정 국어교과서에 올랐다. 1975~88년 실업계 고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거센 파도를 헤치며> 가 실린 것을 시작으로, 1984~89년, 1996~2001년 2차례에 걸쳐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바다의 보고> 라는 글이 실렸다. 바다의> 거센>
그는 동원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9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초ㆍ중ㆍ고교생 대상의 글짓기 대회를 열고 있고, 작년부터는 만 6세 이하 어린이에게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책 꾸러기’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전업 문인들도 김 회장의 문장력과 몽상가적 자질을 높이 평가한다. 김 회장이 1960년대 <사상계> 에 원양어선을 탈 때의 경험을 기고했는데, 이 글을 본 소설가 고 정비석씨는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사상계>
박노해 시인은 그를 “바다를 무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일구어낸 제1호 벤처기업인”이라고 칭했고, 김 회장 제안으로 장편소설 <해신> (海神)을 쓴 최인호씨는 “김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고 평가했다. 해신>
그는 글 쓰기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펜만 잡으면 유려한 문장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독서력이다. 김 회장은 고단한 원양어선 선장 시절, 식료품 등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일본 시모노세키 등 항구에 머무를 때마다 책방으로 먼저 달려갔다. 헌책을 한 보따리씩 사와 배 안에서 취침시간을 줄여가며 읽었음은 물론이다.
요즘도 그는 한 달에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그래서 별명이 ‘독서광’이다. 그의 책 사랑은 자식이나 직원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동원그룹 사내 게시판에는 신간 요약 서비스가 제공된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과 차남 김남정 동원산업 상무는 어릴 적부터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고 A4 용지 4~5매 분량의 독후감을 아버지께 써내야 했다.
김 회장은 “문학적 상상력은 바다를 향한 꿈을 지탱해준 힘”이라며 문학과 경영이 무관치 않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동원그룹 사무실과 연수원 입구에는 세계지도가 거꾸로 붙어 있는데, 이는 패러다임을 바꿔 생각하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김 회장은 “한반도를 거꾸로 보면 광대한 해양을 향해 나가는 전초기지가 천혜의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다”며 “이 지도를 보면 왜 우리가 역사적으로 바다로 뻗어나갈 때 잘 살았고, 문을 걸어 닫을 때 못살았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수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그는 “여수엑스포 유치는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라며 “젊은이들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줄서기보다는 드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패기와 꿈을 키웠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