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치동 주변에서 전셋집에 사는 ‘대전 사람들’의 주름살이 부쩍 늘었다. 지난 2년 사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85㎡(32평형) 아파트를 기준으로 전세 값이 1억 원이나 뛰었다.
전용면적 60㎡ 정도인 ‘24평형’아파트가 3억 원을 넘었으니 어지간한 집 한 채 값 이상이다. 물론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어, 재건축을 기다리는 주인이 일부러라도 돌보지 않았을 ‘쥐가 나올 듯한’ 아파트는 예외다. 공급이 거의 늘어나지 않은 데 덧붙여 온갖 새로운 수요가 나타나고 있어 만성적 수요초과는 완화될 기미가 없다.
■오랫동안 수요를 자극해 온 ‘좋은 고등학교’ 요인은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 비중이 커지는 등 제도변화로 다소 기세가 꺾인 듯하다. 그러나 ‘좋은 중학교’나 ‘좋은 학원’ 수요가 그 이상으로 커졌다. 여기에 ‘좋은 초등학교’ 수요까지 가세했다. 실제로 D초등학교는 주변 지역의 주거 수요를 밀어 올린 최대 요인으로 꼽힌다.
이 지역은 양재천이나 대모산ㆍ구룡산 등 자연공원은 물론이고, 지하철역도 가깝지 않다. 반면 서울의 대표적 유흥업소 밀집지역과 가까워 그 배후지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D학교의 명성 덕분에 동네에 아이들 소리가 넘친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내들은 가정 내 경제권과 정책결정권을 거머쥔 ‘아줌마’로 바뀐다. 교육문제나 그와 직결된 주거 결정권도 대개는 아줌마들이 행사한다. ‘D학교 현상’도 아줌마 특유의 인식, 행동양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아서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는 정도는, 몸 버려가며 술값을 쓰는 데 비하면 실용적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대로 영어공부를 시켜주겠다는데, 서둘러 영어학원과 인근 아파트를 뒤지기 시작하는 데 이르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결국에는 들어맞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고강도 처방이 잇따르는데도 집값 상승을 걱정하고, 대출총액 규제와 금리인상에는 전셋값 상승을 예상했다. 시장의 바닥에서 키워온 동물적 감각으로, 시중 유동자금 등 지표를 읽지 않고도, 정책이 감추려고 했던 구린내까지 맡아낸다.
‘줌마노믹스’라고 불러도 될 듯한 독특하게 비틀린 경제문법이다. 책상물림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골탕먹인 ‘줌마노믹스’가 이명박 정부를 주시하고 있다. 풍부한 실물경제 경험에 바탕한 ‘MB노믹스’라면 능히 대처할 수 있을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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